중남미 세계에 대해 약간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거의 상식에 가깝게 들어본 얘기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창세 신화와 관련된 것으로, 인류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가령 어떤 신화에서는 흙에서, 어떤 신화에선 창세신의 신체 일부에서 인간은 태어났다. 중남미 신화에 따르면 인간은 옥수수에서 태어났다.
“옥수수?”
나는 수업을 듣던 중 웃고 말았다. 물론 그것은 조소에 가까운 것으로 맨 뒤에 앉아있던 내가 결코 교수에게 들킬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옆자리의 한 학생만큼은 노골적으로 기분 나쁘다는 표정을 지었다. 히스패닉계 학생이었다. 잘은 몰라도 멕시코나 그런 곳에서 유학 온 학생이거나 이른바 2세일 것이었다. 나는 헛기침을 하고는 다시 교수의 프레젠테이션을 응시했다.
수업이 끝나고 친구 하나가 내 어깨를 쳤다. 캔자스 주의 여느 토박이가 그렇듯 가업으로 곡식 농사를 하던 친구 톰이었다. 유치한 이름에 중부 촌뜨기란 이유로 깨나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은 아이였다. 괜한 귀티보다는 친근함이 우선 다가온다는 이유일 터였다.
톰은 내게 주말에 할 일이 있느냐 물었다. 곧 졸업을 앞두고 있는 나로서 따로 주말에 낼 시간이 없음은 당연했다. 본래 톰과 내가 만난 전공 수업─종교학이다─조차 2학년부터 들을 수 있는 수업으로 4학년인 내가 들을 필요는 없는 수업이었다. 중남미 종교에 대한 이해. 강의명에 이해란 단어가 들어가면 으레 그렇듯 상식선의 수업이었다. 4학년이 내가 더 들을 게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나 그런 투정에도 불구하고 종교학을 전공으로 졸업하기 위해선 반드시 들어야만 하는 필수 과목이었다.
주말에 시간 괜찮을 거라 말한 내게 톰은 티켓 하나를 건넸다. 영화 티켓으로 최근 기대작 중인 하나였던 해리포터와 혼혈왕자였다.
“남자 둘이 영화관 가자고?”
톰이 크게 웃었다.
“남자 둘이라고 하니까 이상하잖아. 사실은 여자친구랑 같이 보러 가기로 한 건데 여자친구가 그날 회사 면접 있다고 못 가겠다고 하더라. 넌 어차피 그 날 방에 처박혀서 책만 볼 거잖아. 불쌍한 4학년. 어때, 나랑 같이 보러 가지? 아니면 나 혼자 영화관에서 해리포터 보라 할 생각이야? 물론 헤르미온느는 좋아하지만 그건 그다지 바람직한 생각이 아닌 것 같은데?”
톰의 말에 나 역시 동정을 느꼈다. 나야 원래 여자친구가 없으니 혼자 봐도 그러려니 하겠지만 여자친구가 있는 놈이 혼자 영화를 봐야 한다니. 나는 톰과의 주말 약속을 잡은 뒤 귀가했다.
잠에 들고 얼마나 지난 지 감 잡을 수 없을 때쯤, 나는 엄청난 열기에 눈 떠야만 했다. 하늘이 노랗다는 걸 실제로 경험하기는 처음이었다. 원래의 하늘색이란 어떠했던가? 어두울 땐 거멓고 맑을 땐 푸르지 않았던가. 그러나 눈을 뜨자마자 보게 된 노란 그 하늘의 원래 색은 어떠했는가 나로선 감히 말하기조차 두려웠다.
─ 티다다닥.
어릴 때 한국에서 갖고 놀아본 적이 있었다. 콩알탄이라고 기억하는가? 마치 그것들을 한꺼번에 던져 터뜨리는 것만 같았다. 혹은 폭죽놀이에 사용하는 주(主)현 폭약 다발을 터뜨리는 것만 같았다. 분명 독립기념일(7월 4일)에 들어본 기억이 있는 것 같았다. 타다다닥 하며 화약에 불이 붙어 터지는 화약 덩어리.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화약 따위는 근처에 존재치 않았다. 그렇다고 주변의 풍경이 내가 잠들었을 때의 그 풍경이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금빛의 산맥이라고 한다면 그 표상에나마 근접할 수 있을까? 나는 그 기이함─자고 일어났는데 당신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눈을 뜬다 생각해보라!─에 경악하며 한층 더 자세히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으나 나의 몸은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내 몸의 내 정신과 분리되어 있기라도 하단 말인가! 이른바 유체이탈과는 분명히 다른 감각이었다. 애당초 종교학을 전공으로 하던 나로서는 소위 말하는 종교현상에 다소 비판적이기도 했거니와, 굳이 말하자면 나는 다른 어떠한 교수들보다도 회의적이었다! 비판은 분명 내가 종교현상들에 가진 생각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선 불충분함에 분명했다 샤먼들의 오르가즘 따위야 화학작용으로 설명되는 거라 믿어 의심치 않던 나는 이 상황에 대해서도 역시 과학이라는 미명 하에 풀어 해석하보고자 애썼다. 결국 무소용이었지만.
최소한 나는 내가 느끼는 이 감각이 텔레비전 따위에 소개되는 유체이탈과는 다른 것임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론적으로 유체이탈 시 느끼는 감각은 육신과 영혼, 더욱 구체적으로 그리고 과학적으로 말할 시 정신의 분리였다. 그러나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이 기이한 감각이란 어떠한가? 분명 나의 정신은 멀쩡하고 나는 내 신체, 다시 말해 안구가 좇고 있는 시선으로부터 한단코 떨어져 있지 않음에 분명하고도 내 육신을 다스릴 수 없었다. 애원하고 애원해 봐도 팔은,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심지어 고개조차 돌릴 수 없는 상황이 바로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이었다. 심지어 눈꺼풀조차 내 의지에 반했다.
내 위로 은빛의 무언가가 지나갔다. 눈의 먼 곳 하늘 위에서 기계의 날개─성화에서 묘사되는 천사의 그것과는 ‘분명히’ 달랐다!─가 지나갔다. 마치 팬을 연상시키는 것으로 그것은 전체적으로 얇고 날카로운 듯 보였으나 그것은 분명 내게 있어선 거대한 괴물이었다. 두께로 이르자면 내 시선을 압도하는, 거리는 알 수 없었지만 실거리에 무관하게 묘사하자면 내 허리 절반에 가까운 두께를 가진 괴물이었고, 색으로 따지자면 그것이 갖고 있는 은빛은 내가 보아온 어떤 것과 비할 데가 없는 기이한 빛을 내고 있었다. 어떠한 금속이 저것에 비할 수가 있을까? 최소한 그것이 은빛을 띠는 금속임은 어렴풋이 확신할 수 있었다. 어떠한 금속인지는 감히 말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체 그 은빛을 어디에 비해야 좋단 말인가! 나는 은수저니 생맥주 기계 따위를 떠올려봤지만 그 어떠한 것도 거기에 비할 수 없었다.
그것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싶었는데 바로 뒤이어 하나의 날이 더 지나갔다. 그리고 하나, 하나, 하나. 그것들이 지나가는 데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것은 진정 몇 개의 날이 하나로 이어진 팬임에 틀림없었다. 그것을 개발한 소위 창조자에 대해 나는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지만, 은빛 악마의 창조자야 악마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나는 내가 처한 현실에 절망하였다.
덜컹!
아래에서 커다란 진동이 있다 싶더니 내 주변의 금빛 바위들이 하늘로 들이 올려졌다. 그것들은 이어 팬에 치여 비명을 질렀다. 비명을 질렀다. 나는 이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것은 감히 은유가 아니라 사실 그 자체였음을 나는 내 가슴 위에 두 손을, 비록 내가 현재 손을 움직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얹고 고백한다. 이것은 틀림없는 진실이었다! 사실이었다! 그들은 비명을 질렀다! 그들은 마치 곰팡이를 연상시키는 백색 혹은 금빛 바위들이었다! 바로 그들, 비명을 지른 그들 말이다!
나는 차마 내 눈 앞에서 펼쳐진 상황을 무어라 설명해야 할지, 내 설명을 요구치 말길, 이건 내게 있어서도 기이한 일이었으니! 나는 다만 후에 내게 설명해 준 자의 얘기를 더하고자 하나 이는 지금 꺼낼 이야기가 아니다. 마저 설명하자면 팬에 바위들은 멀리 날아갔다. 각자 방향은 달랐다. 어떤 것은 다시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으며, 어떤 것은 사방으로 멀리 날아갔고, 어떤 것은 하늘로 올라간 뒤 ‘천국’에 부딪힌 뒤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대체 이 세계란 어떤 것이란 말인가! 바위들은 마치 창조주로부터 제각기 생명을 부여 받은 양 비명을 질러댔고, 나는 그 비명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한 어떠한 몸부림조차 감히 취할 수 없었다. 이를 테면 말라붙은 시체를 앞에 둔 채 겁에 질려 웅크린다거나, 유신조차 없는 우리에게 어떠한 실제적 공격적 행위를 취할 수 없는 뜬구름으로부터 시선을 피한다거나 하는 그 어떠한! 나는 그 어떠한이란 단어를 강조하고 싶다. 그 어떠한 행위조차 할 수 없는 이 행위에 나는 심지어 무어라 불만을 늘어놓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하늘로부터 기이한 물체가 내려왔다. 비유하자면 그건 오리의 입술과 비슷한데, 그 안팎이 뒤집혀져 있는 것 같기도 했고, 위아래 양쪽 중 한쪽만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것은 바위들을 들어올렸다.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괴물이었다. 저 수많은 바위들을, 그 괴물의 내 시야 앞 땅의 몇 할 혹은 몇 푼을 들어올렸나 생각해 보면, 신음소리 하나 내지 않고 들어올린 것이 괴물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자세히 들어보니 웅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마저도 괴물의 소리는 아니었다.
순간 나는 외계인에게 납치된 것인가 하는 추측마저 하게 되었다. 이 얼마나 비일상적이고 비상식적인 추측이란 말인가! 정상적인 상태에서라면 나는 내가 꿈을 꾸고 있다 추측할 것이었거늘 지금의 상황은 내 이성을 농락했다. 그러나 외계인에게 납치되었다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내가 처한 상황 역시 합리적인 설명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 내 몸을 가르는 메스도, 나를 내려다 보는 커다란 눈도 이곳엔 없었다.
끼익. 탁!
비록 내 시선이 하늘에 고정되어 있던 탓에 알 수는 없었지만 소리로 짐작컨대 아마 누군가 창문 등을 닫은 것 같았다. 처음엔 그것이 무슨 소리인지 반신반의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그것이 창문이었음을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창문은 바로 내가 있는 방─방이라기엔 지나치게 넓은 것 같은─의 창문이라는 점이었다! 설명하지 않았던가! 아니, 설명이란 단어론 내 감정을 표현하기엔 부족하다. 고백하지 않았던가, 노란 하늘은 하늘 그 자체로 태양을 연상시키는 강한 열기를 띠고 있었음을! 이 공간이 폐쇄됨과 함께 나는 엄청난 열기에 몸이 녹는 것만 같은 괴로움을 느껴야 했고, 뜨거운 공기에 의한 질식 증세마저 느껴야 했다. 사막에 가본 적도 없는데 답답한 열기에 숨막혀 몸부림친다는 걸 몸소 겪게 될 날이 올 줄은! 이것은 악몽임에 분명했다!
“크으.”
사람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내 곁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와, 만일 내가 몸을 돌릴 수만 있다면 그는 바로 내 옆에 있을 것만 같다는 희망을 심어 주었다. 어쩌면 그는 곁에서 내게 상황을 설명해주고, 이 지긋지긋한─시간은 얼마 흐르지 않았음에 분명함에도─ 상황으로부터 달아나는데 도움될만한 것을 알려줄지도 몰랐다. 미안한 말이지만 그가 하지 못한 일이라고 나 역시 하지 못하란 법은 없지 않은가? 나는 이 생지옥으로부터 달아나 보이고 말 것이었다!
“거기 누구 있나요! 대답 좀 해주세요!”
“영어로 말할 필요 없네.”
나는 현재 나와 함께 이 곳에 갇혀 있는 게 같은 한국인이란 사실에 놀라면서도 기뻐했다.
“맙소사, 불행 중 다행이네요. 여긴 대체 뭐죠?”
“지옥.”
또 다른 사람의 목소리였다.
“지옥.”
“지옥이지.”
“형벌을 받는 곳.”
이 곳에는 나 이외에도 최소 수십은 되는 사람들이 갇혀 있는 것 같았다.
“형벌요? 뭐에 대한요?”
무언가 이 기괴한 곳─살면서 노란 하늘이나 노란 바위가 기괴하다 여긴 적은 없었지만 이 총체적인 상황만은 분명 기괴했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라 희망했던 나는 곧 그들의 정신 상태가 조금 불안정하다는 것을 눈치채곤 나 역시 불안을 느끼게 되었다. 다소 서두르지 않으면 그들은 모두 착란 상태 등에 빠져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나로 하여금 그들을 더욱 다그치게 하였다.
“뭐에 대한 형벌요!”
“히이이익.”
그들은 일제히 실성하기라도 한 듯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나는 그 와중에 누군가가 탈진해 힘 없는 목소리로 “믿음”이라고 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뭐에 대한 믿음요? 왜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거죠?”
나는 그들을 보챘건만 나 역시 머잖아 어떤 연유로 그들이 실성하기 시작한 것인지 그 이유를 직접 목격하게 되었다. 물론 그들과 마찬가지로 비명을 지른다거나, 힘없는 곡성으로 울부짖는다거나 하기에 나의 정신상태는, 감히 ‘불행하게도’라고 수식해도 될 정도로 멀쩡했다.
끼익. 탁! 갑자기 바깥 공기라 생각되는 찬 공기가 들이닥쳤다. 내 몸이 조금이나마 차게 되는 것을 느끼고 나는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그건 아쉽게도 순간의 행복으로, 나 역시 그들이 느끼는 공포의 원인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거대한 오징어를 연상시키는 것으로, 인간인 내 시선에 다 찰 정도로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했다. 거대 오징어가 바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저건 십 수 미터가 아니라 수 십 미터에 가까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 징그러운 다섯 촉수의 마디마디 하나가 내 전체 몸과 비슷한 크기일까? 처음엔 빛 때문에 그 색이며 형상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것이 점점 땅으로 촉수를 아래로 하며 내려옴과 함께 구체적인 모습이 드러났다. 다섯 다리를 가지고 그 위에 어디까지 긴 것인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몸통을 지닌 오징어!
“톰, 혁은 어떻게 된 거야?”
같은 수업 동기 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맙소사! 톰 역시 근처에 있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대화로 미루어 보건대 결단코 그들은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해있지 않았다. 서서히 그들의 대화가 페이드 아웃되어 그들이 무어라 말하는지 자세히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들은 일상에 있었고 나는 그러하지 못했다. 그들은 자의로 움직일 수 있었고, 나는 그러하지 못했다. 그런 만큼 그들이 나를 도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 온갖 욕설이며 뜻 없는 단어며 뱉어 그들의 시선을 끌어보려 했지만 어떠한 반응도 돌아오진 않았다.
“몇 인분 드릴까요?”
바깥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소용 없어.”
어째선지 거대 오징어가 하늘에서 움직임을 멈추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건넸다.
“누구죠?”
“여긴 지옥이야. 죄에 대한 형벌을 받는 곳이지. 이런저런 종교 공부하면서 좀 배웠을 거 아냐, 지옥이 뭔지. 그렇다면 이게 지옥이겠지.”
“무슨 죄요?”
“믿음에 대한 부정!”
나는 모습을 볼 수 없는 그 사람의 발언에 콧방귀를 꼈다.
“무슨 말씀이신진 모르겠지만 저는 한평생 무신론자로 잘만 살아왔어요.”
“아니, 넌 타인의 믿음마저 부정했지. 메이즈라고 하면 기억할 텐가?”
옥수수!
“신은 그런 자들에게 저주를 내리는 모양이야. 자신의 원형으로 돌아가도록! 마치 야훼가 아담의 후손들을 흙으로 돌려 보내듯!”
“그렇다면 우린 옥수수란 얘긴가요?”
“정확히는 옥수수 알이지. 사람 하나는 옥수수 하나에 필적해. 사람 하나의 영혼은 수 백으로 갈기갈기 찢겨져 그 원형으로 돌아가게 되지.”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내게 말을 걸어온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 자는 미쳤음에 분명했다고 생각했다.
“너는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지만 난 똑똑히 기억해. 이 열지옥에서 내 몸의 온갖 수분이 빠져나가고, 내 몸이 부풀어 오르고, 폭발하는 그 때의 감각을……. 오장육부가 신체 밖으로 터져나가는 것 같은 그 고통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감각이지. 하지만 말이야, 말했지 않은가, 우리의 영혼은 수 백으로 나뉘어져 이 지옥을 몇 번이고 반복하게 되어 있다고.
무슨 말이냐고? 자네도 이 지옥을 수 십, 수 백 번 반복할 거란 얘길세. 장담하네.
내가 그랬거든. 혁.”
어떻게 그가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거지, 라고 오래 생각할 건 없었다. 내 영혼이 정말로 옥수수 알 하나하나로 나뉘어져 있다면 어떻게 지금 여기 있는 나만이 나라고 확언할 수 있겠는가? 내가 그에 대한 확답을 묻기도 전에, 눈 깜짝할 새 거대 오징어는 그 모습을 감추었다 오리 주둥이 비슷한 것과 함께 나타나 ‘그’를 데려갔다. 나는 운 나쁘게도 ‘그’의 마지막 모습을 확인하며 나의 미래를 확언하게 될 수 있었다. 바위로서, 팝콘으로서, 나도 누군가의 입 안에 들어가 씹힐 것이었다. 육신은 송곳니며 어금니에 산산이 조각날 것이었다. 그나마 정신이 남아있다면 위장 속에서 타 들어가는 고통을 느껴야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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