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립시계의 숫자표지 한 칸이 떠밀린다.
토글스위치를 밀 젖혔을 적. 그러한 단절적 울림.
시계에 덩그러니 8자가 드러났다.
무미건조한 비프음이 뒤 잇는다.
동규는 그때에야 시계에 머문 눈길을 거둔다. 그의 눈은 다시 신문을 좆고 있다. 아니, 그런 척 하고 있었다. 그는 교묘히 눈을 흘기며 주방 쪽을 감시했다.
그곳에는 아내, 명주가 있었다. 밥솥에서 솟구치는 증기로 가일층 분주함을 더해갔다.
그녀는 간이 조리대 위로 도마를 펼쳤다. 곁따라 둔 생선이 도마 위로 오르고 아내는 마주 놓인 칼꽂이에서 빗금 가득한 막칼, 한 자루를 집어 들었다. 토막 치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거리낌 없이 그녀는 칼을 추어 든다.
허공으로 떠오른 칼날은 한껏 번쩍이다 가라앉았다. 쾅. 비명 같은 울림이 혈관 깊이 스민다. 동규는 아연 선뜻함을 느꼈다.
여느 때와 같은 아침 정경이었으나 그에게만은 달랐다. 견딜 수 없을 만치 솟는 위화감. 이성의 무게로 억눌리는 중압감. 이 모든 게 부유하는 먼지처럼 그의 주위를 떠돌았다.
동규는 숨조차 들이 쉬기 힘들 지경이었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사태의 추이를 파악해보고자 애썼으나 모든 것이 허사였다. 피상적인 문제점은 전연 없었으니까. 그 스스로도 자신만이 느끼고 겪는 문제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새삼 지난 일을 떠올릴 필요도 없었다. 정확히 일주일 전 병원에서 동규는 아내를 알아보지 못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그의 아내였지만 아내가 아니었다. 그는 이러한 이율배반적인 감정에 극심한 혼란을 느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했다. 그의 주치의에게조차 말이다. 그는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고 싶었다. 이성의 끈을 결코 놓질 못했다. 하지만 이미 불가해한 현실 속에 함몰된 이성은 섣불리 혼란만을 가증시킬 뿐 이었다. 그가 이성적 기준에 의해 내린 판단들은 도리어 심한 감정적 반발만 불러일으켰다. 마치 겉과 안에 다른 자아가 존재하여 헤살을 부리는 것처럼.
하지만 그는 한 가지 분명하게 구분 지을 필요가 있음을 잊지 않았다. 그럼 대체 저 여자는 누구란 말인가?
비상식적일지 몰라도 그에게는 더없이 중요했다. 그가 그녀를 아내로서 인지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전신의 모든 감각들이 부정하는 여자를 아내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불현듯 끓어 넘치는 소리에 생각이 멈춘다. 냄비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명주는 당황한 기색도 없이 몸을 움직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동규는 커피를 들이켰다. 그의 눈이 한층 더 가늘어진다.
그가 출근길에 접어든 시간은 그로부터 5분이 지나서였다. 차를 몰고 나왔을 때는 교통체증이 부쩍 심해진 뒤였다. 최근 들어 부쩍 심해지긴 했지만 동규는 아내의 모든 것이 다 의심스러워졌다. 그녀의 행동, 그녀의 말투, 그녀의 음식까지도. 억측이었으나 동규는 자신이 대기업의 고위임원이었고 충분히 재산을 노리고 그 같은 일을 꾸밀 수 도 있다고 생각해 보았다. 사고 후 어쩌면 부분적인 안면인식장애를 겪고 있을지도 모르고 기억 쪽에도 뭔가 문제를 안고 있다면, 그 같은 점을 악용해 접근해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가 다친 부위가 대부분 머리 쪽이라는 것을 상기하면 아주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따로 주치의가 통보한 적은 없었지만 사실 자신이 먼저 입을 열지 않았기에 그런 증상들에 대해 알려 줄 기회조차 없었는지 도 모른다. 당초, 그가 기억하는 아내에 대한 이미지는 추억 속 먼 기억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체 무엇을 믿고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인가. 모든 가정을 끌어내고 혼탁한 가능성 중에 가장 그럴듯한 점들을 골라내야만 한다. 흔들리지 않게, 무너지지 않게. 완벽한 이론무장이 필요 했다. 이대로는 자신이 정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빌어먹을.‘
그는 욕지거리를 씹어 삼켰다. 우물거리는 음성이 입술을 비집고 나와 신음성으로 흐려진다. 동규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엑셀레이터를 있는 힘껏 밟아 젖혔다.
자그마치 6개월이었다. 가물거리는 의식으로 정신을 잃고 깨어나기를 반복한 것이 6개월이었다. 동규는 그 진절머리 나는 기억들을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유리창 바깥을 건너보며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오후의 햇살이 따사롭게 카페 안에 비춰들고 있었다. 그가 앉은 자리에 빛살이 가득 했다. 그가 느끼던 초조감도 일순 무뎌진 듯 했다. 오랜만에 숨통이 트인 기분으로 동규는 찻잔에 입을 가져댔다. 시선은 한곳에 붙박아 둔 채로. 그는 누군가를 몹시 기다리고 있었다.
햇빛이 조금씩 걷힐 무렵, 그의 눈이 살짝 커진다. 얼굴이 창문에 바싹 다가든다. 달라붙다시피 얼굴을 붙여두고는 한 사람의 이동 경로를 따라 옮겨갔다. 집요할 정도로 그런 모습을 유지하기를 10분. 마침내 동규가 오래도록 기다린 사람이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섰다.
-딸랑
문 위에 달린 도어벨이 울리고 한 사람이 나타났다. 앳된 여자였다. 고교생 쯤 되는 외모에 교복을 입었다. 그 나이 특유의 미묘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동규는 그 아이를 보고나서 조금 안심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아내에게 느끼던 거리끼는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동시에 테이블에 붙은 차임벨을 눌렀다. 벨소리가 요란히 울러 퍼졌다.
“아, 여기.”
그가 손을 들어보이자 여자애가 부루퉁한 표정으로 걸어왔다. 때마침 남자 종업원 한명이 주문을 받으러 왔다. 곧 그녀가 합석하고 이어지는 종업원의 주문에 여자애는 푸딩 아라모드를 시켰다. 동규는 종업원이 완전히 물러나 사라질 때까지 눈치를 보다가 비로소 입을 떼었다.
“그렇게 단 걸 먹으면 살찌지 않아?”
“아저씨가 상관할 바 아니잖아.”
기껏 한다는 말이 고작 쓸데없는 참견이라는 사실에 동규 스스로도 머쓱해졌다. 분위기가 냉랭해지자 그는 헛기침을 터뜨리며 예의 상황을 주시했다. 별다른 대화도 없이 서로 창 밖에 시선만 붙들어 매고 있자 어느새 주문한 메뉴가 나왔다. 여자애는 스푼을 들다 말고 약간 누그러진 투로 물었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이야? 몇 달 동안 연락도 없었으면서.”
그녀는 조심스레 주위를 살폈다.
“그것도 이런 곳에서 보자고 그러고.”
동규는 속으로 비웃음을 쳤다. 그러나 겉으로는 전혀 내색하지 않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무슨 일은. 아저씨가 유미 보고 싶은 거니까 그런 거지. 사실 그동안 연락 못한 것도 사고가 나서 말이지.”
유미의 눈이 살짝 커졌다.
“사고? 무슨 사고?”
썅 년 놀란 척은. 그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교통 사고였어. 좀 큰 사고였는데 그래도 지금은 건강해. 병원에 한 6개월 정도 있었는데 어후 정말 말도 마라. 정신을 잃다 깼다 잃다 깼다 그러는데 사람 미치는 줄 알았다. 그래도 좀 정신이 말짱할 때는 유미 네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
유미는 스푼 끝을 살며시 깨물며 한 손으로 머릴 받쳐 보였다. 그의 말을 좀 더 들었으면 하는 눈치였다. 갸우뚱 기울어진 얼굴 형태를 따라 탐스런 머리칼이 흐드러졌다. 웨이브 진 머리칼 이랑을 따라 빛 우물이 패였다.
“아무튼 정말 엄청난 사고였어. 임원 연수차 지방으로 내려 가다가 그 꼴이 났는데. 차가 뒤에서부터 꽝하고 부딪쳐서 완전히 걸레가 됐다니까? 진짜 상상도 안 될거야.”
살결. 본래의 흰 빛으로 빛나던 살결은 노을빛에 그을린 마냥 다홍색으로 찬란했다. 짧은 소매 사이로 드러난 팔을 보며 그늘 드리워진 얼굴로 눈길을 돌린다.
“거기서 살아남은 것도 기적이지 뭐. 이야 진짜 죽는 줄만 알았지 뭐야.”
요염히도 깜박이는 눈꺼풀. 누군가가 세심히 매만진 듯, 예쁘게 피어난 눈매에서 그는 천천히 훑어 나갔다. 그리고 연분홍 빛으로 오물대는 입술을 보며 그는 지금껏 참았던 욕정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저 귀여운 입술 사이로 자신의 혀를 비집어 넣고 싶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지금 당장.
“아저씨 하고 싶은 얘기가 그게 아니잖아.”
“뭐?”
그는 되물었다. 솟구치던 욕정도 금새 사그라졌다.
“얼굴에 다 쓰여 있는데?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숨기고 있다는 거.”
“무슨 말이야 그게?”
유미는 피식 웃음을 지어 보인다. 동규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얼마 후 두 사람은 카페 문을 나섰다.
어두컴컴한 방 안.
협탁등의 흐린 불빛 사이로 담배 연기가 산란히 비산한다. 그 모습을 면밀히 관찰하며 동규는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한참 만에 부시럭대는 소리를 들었다. 그가 고개를 돌리자 꿈틀대는 홑이불 틈새로 얼굴을 내민 유미를 볼 수 있었다. 얼굴이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지금 한말 있잖아 아저씨.”
유미가 팔을 뻗어 담뱃갑에 손을 가져댔다. 기다란 손가락을 더듬어 하나를 끄집어내자 끊어질 듯 덜렁대는 담배 한 가치를 손에 쥘 수 있었다. 못마땅한 표정으로 눈을 가늘게 뜨더니 담배를 고쳐 문다.
“그거,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그녀가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그럼 당연하지. 내가 진짜라고 생각 안했으면 뭣하러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겠어.”
“그건 그렇지만.”
두 사람이 동시에 담배 연기를 뿜는다. 방 안은 피어오르는 연기로 들어찼다.
“그래서 말이지.”
유미가 얼굴을 마주보면서 말했다.
“아저씨가 그것 때문에 곤란하다면 말이야. 내가 도울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
“도와준다고?”
동규가 옆으로 몸을 돌려 누웠다. 그의 손이 유미의 가슴을 움켜쥐며 문지른다.
“뭐 좋은 생각이라도 있냐?”
유미는 싫은 기색을 내비치며 몸을 살짝 비틀었다.
“아는 오빠 중에 그런 쪽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있거든. 혹시 아저씨 생각 있으면 말이야…….”
“잠깐만 지금 흥신소 같은 거 말하는 거야?”
“그런 건데, 정말 괜찮아. 돈만 내면 원하는 건 다 얻을 수 있다니까.”
동규는 담배를 비벼 끄며 유미를 노려보았다. 유미는 생글거리는 표정으로 동규를 바라보았다.
“너 그런 것도 알선하고 그러냐.”
“아니야, 아저씨. 난 그저 필요한 사람한테 필요한 걸 주는 것 뿐이라구. 주 고객대상이 아저씨들 뿐이긴 하지만.”
유미는 좀 더 표정을 굳힌 채 말을 이었다.
“근데 이게 참 웃긴다? 그 아저씨들이 자기는 이런 짓하고 다니는 거, 별거 아닌 걸로 생각 하면서 자기 마누라가 다른 남자 만나고 다니는 건 용납 못하거든. 그래서 돈을 쏟아 부으면서 어떻게든 잡아내려고 하는 거야. 난 이해를 못하겠어. 정말로 사랑해서 그러는 걸까? 아니면 단순 질투심 같은 거? 나한테 속에 있는 말까지 털어놓기 때문에 이런 일도 할 수 있는 거기는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정말 싫어.”
그리고 그녀는 귀엽게 미소 지으며 덧붙였다.
“아 그렇다고 아저씨가 그렇다는 거 아냐. 아저씨는 다른 이유니까.”
동규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긍정의 표시도 뭣도 아니었다. 그저 습관처럼 튀어나온 행동이었다. 단순히 이야기를 마무리 짓기 위한 불가피한 행동. 유미는 담배를 비벼 껐고 동규는 애써 어색함을 지우려는 듯이 과장된 몸짓으로 기지개를 폈다.
“대실 시간 다 됐다. 나가자 이제.”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기 시작했다.
이 후 몇 달 간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매일같이 심지가 타드는 폭탄을 껴안은 기분으로 아침을 맞고 하루를 끝낸다. 신경쇠약 증세는 날로 심해졌다. 아내에 대한 의심은 불어나 적개심으로 돌변했다.
“여보 요즘 들어 표정이 안 좋은데. 무슨 일 있어?”
“뭐?”
그녀의 말 한마디가 비수처럼 가슴에 꽂혔다. 사소한 말 한마디조차 그를 옥죈다. 명주는 사뭇 걱정스런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감정을 억누른 채 살아가는 것이 힘들었음은 자명했다. 그는 집을 빠져나왔다. 뒤에서 아내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동규는 뒤돌아 보지 않았다. 볼 수 없었다.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살아가기에는 그가 견뎌야 할 무게가 녹록치 않았다. 긴 호흡을 내뱉으며 되도록 집에서 멀리 떨어진다.
그가 멈춰 선 것은 한적한 공원 안 이었다. 가로등 불빛이 메마르게 비춰선 곳에서 무심코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키패드를 더듬던 그의 손이 순간 멎었다. 잠시 주저하기를 십여 분. 액정 화면에 수차례 숫자가 지워졌다 나타났다. 그는 폴더를 닫아 넣고는 근처 벤치에 앉아 담뱃불을 붙였다. 연소하는 담배 필터를 따라 희끔한 연기가 솟아났다. 이내 가로등 빛에 얼룩져 사라진다.
그는 줄담배를 피우며 앉았다. 눈빛은 불안하게 흔들렸고 버려지는 꽁초도 늘어났다. 이따금 걸려오는 착신음에 그는 신경을 곤두세우며 배터리를 빼버렸다. 집에서 걸려온 전화였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동규도 최근의 심경변화를 아내가 눈치 챘음을 조금이나마 느꼈다. 그녀의 태도가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본래의 태도보다 훨씬 조심스러워졌고 종종 그의 눈치를 살폈다. 실상 그가 느끼기에는 흉계를 감추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가증스러운 모습에 분노가 치밀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나마 이 여자가 명주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 셈이었다.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더 이상 자기 자신의 이해를 구하는 것도 무리라고 생각했다. 본능적인 감각을 더 이상 부정하고만 있을 수만은 없었다.
동규는 결단을 내렸다. 휴대폰 배터리를 찾아내 다시 전원을 넣는다. 화면이 뜨자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 동규는 자신이 이성적인 사람임을 자처하는데 포기했다.
그는 허름한 상가 안에 있었다.
낡은 소파에 앉은 채로 테이블을 사이에 둔 남자와 마주 보고 있었는데 남자는 시종일관 무표정이었다. 그 모습이 흡사 돌조각 같았으나 동규가 구체적인 방문 목적을 알리자 남자의 얼굴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미소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작위적이었다.
이윽고 남자는 몇 가지 종이 뭉치를 꺼내 놓았다.
“잘 오셨습니다. 정말 제대로 찾아오신 겁니다. 저희는 각종 일들을 도맡아 하지만은 그 중에서도 불륜 전문이죠. 이 쪽에서 우리만큼 전문적인 데는 없을 겁니다.”
“아 저기 제 말뜻을 잘못 이해하신 것 같은데, 불륜 현장을 잡아달라는 게 아니라…….”
남자는 손을 들어 제지했다.
“아, 어찌되었든 사모님 되시는 분이 미심쩍다 이거 아니십니까? 저희는 그런 미심쩍은 부분들을 포착하면 된다는 말씀이시고.”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길게 갈 거 없습니다. 원하시는 방향으로 해드리죠.”
남자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처음 오셨다니까 설명 하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저희는 대행업체입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도 손님께서 저희에게 청부하시는 일의 성격에 따라 요구 금액 또한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통화 내역 도청을 원하시면 따로 복사폰을 만드는 비용까지 해서 대략 백육십 선, 도감청 설비 내지 몰카 제작 설비는 이백오십. 위치추적장치 비용 같은 경우에는 백만원 선에서 해결을 보실 수 있습니다. 그 외 다른 소재자 파악이나 인건비가 들 만한 일에 관해서는 따로 비용을 책정 하겠습니다만.”
“그 외 인건비라는 건 뭡니까?”
“그런 거 있지 않습니까. 쉽게 말해, 불륜 상대방에 대한 인적 사항이나 주소지 근무처 등을 알아내는 데 들어가는 인건비 말입니다. 원하신다면 우리 선에서 해결할 수도 있는데 그에 따른 비용이 다 그 외 인건비에 포함됩니다.”
“알만하군요.”
동규는 코팅 된 종이 한 면을 들여다 보았다. 소형 카메라와 도청 장비들이 줄지어 인쇄되어 있었다. 그가 관심을 내보이자 남자는 지치지도 않고 또다시 입을 열었다.
“요새는 기술이 좋아져서 웬만큼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장기간 사용이 가능합니다. 아무리 못해도 삼개월 정도는 작동하는데 무리가 없을 겁니다. 예전만 해도 일반 전지를 썼었는데 지금은 수은전지를 갖다 쓰기 때문에 그렇죠.”
인쇄된 카메라는 상상이상으로 작았다. 지포라이터 크기의 카메라부터 심지어 자신의 손가락 마디정도 크기의 카메라도 있었다. 그는 더 볼 것도 없다고 판단했다.
“영상 음성 둘 다 되는 걸로 합시다. 설비비 까지 포함해서.”
남자는 고개를 들었다.
“그럼 설치 대수는?”
“집 안 곳곳에다 해놓을 거니까 못해도 다섯. 눈에 띄는 건 싫으니까 이정도 크기로 해주시고.”
동규는 담뱃갑 크기 정도의 카메라를 손으로 짚었다. 남자는 잠시 그쪽으로 시선을 주고는 고개를 숙여 서류 위에 펜을 끄적인다. 그리고 얼마간 대화가 끊겼다. 잠시 후에 남자가 얼굴을 들었고 종이를 돌려 동규 앞으로 내밀었다. 견적서였다.
“현금가로 이정도 되겠습니다. 먼저 절반 주시고 나머지는 모든 설비가 끝나는 대로 받도록 하겠습니다. 아 카드나 수표는 되지 않으니까 착오 없으시도록 하시고요.”
“알았으니까 전화 번호나 줘봐요.”
동규는 휘갈겨 쓴 메모지 하나를 받았다. 그는 그것을 주머니에 꾸겨 넣고는 돈 꾸러미를 넘겨 주었다. 거액 이었다. 그리고 일어설 채비를 서두른다.
“야, 꼬쟁아! 안에 있냐?”
갑자기 남자가 언성을 높였다. 동규는 움찔하며 자리에 주저앉았고 안 쪽에서 우당탕하는 소리를 들었다. 곧 한 사람이 뛰쳐나왔는데 깡마른 체구의 젊은 남자였다.
“얘가 선생님 댁을 방문할 겁니다. 실력이 쓸만한 놈입니다.”
동규는 앞머리를 쓸어 올리는 남자를 보았다. 눈가가 퀭했다.
“잘 부탁 드립니다.
동규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고 남자는 말없이 손을 마주 잡았다. 손바닥이 몹시도 찼다. 황급히 손을 빼내며 동규는 말했다.
“그럼 이제 가보겠습니다. 방문 일자는 삼일 후에 전화로 먼저 연락을 해주시고. 되도록 실수 없이 해주십시오.”
“아무려면 저희가 허투루 하겠습니까.”
동규는 사장쯤 되는 남자와 악수를 끝으로 상가를 나왔다. 동규가 완전히 사라지자마자 사장은 얼굴에 만연한 미소를 싹 지운 채 물었다.
“좀 이상하지 않냐?”
사장의 말에 꼬쟁이라는 남자는 차갑게 미소 지었다.
“뒤 한번 캐봅니까, 박 사장님?”
박 사장이 털썩 소파에 주저 앉으며 고개를 돌렸다. 목에서 울리는 뼛소리가 요란했다.
“저 새끼 얘기는 유미 그 년한테 들어서 너도 알텐데 말이야. 동기가 이상하단 말이야. 저거 십중팔구 뭔지 감이 안 잡히냐?”
“전에도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죠, 아마.”
박 사장은 고개를 뒤로 늘어뜨린 채 고개를 틀었다. 그는 얼빠진 표정으로 입만 힘겹게 움직여 말한다.
“함 알아봐라. 실수하면 우리 장사 말아 먹는다.”
남자는 통로를 따라 걸으며 호수를 주의 깊게 살폈다. 15층 네 번째 집. 1504호. 호수 번호를 확인한 남자는 가져온 박스를 내려놓고 초인종을 누른다. 띵동. 클래식한 벨소리가 울리고 한참 후 도어체인이 걸린 문이 열렸다. 동규였다. 의심가득한 눈으로 그를 훑어본다.
“유삼훈이라고 합니다. 일전에 방문하셨던 가게에서 한번 뵈었는데…….”
문이 다시 닫히더니 떼깍 자물쇠 푸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요.”
동규의 말에 남자는 다시 박스를 품에 안고 들어갔다. 집 안은 고급 아파트 단지에 걸맞은 크기를 자랑했다. 75평형 전세가로 1억 5천이었다. 그는 뒤로 캐낸 정보를 바탕으로 집을 휘둘러본다. 집 안에는 동규 외에 아무도 없는 듯 했다. 남자는 날카로운 눈매를 감추며 말했다.
“일단 구획별로 나눠서 설치하도록 하겠습니다. 사각이 생기지 않는 범위에서 설치를 해야되다보니 집을 좀 둘러보겠습니다.”
동규는 그 말에 신경질적으로 답했다.
“알았으니까 맘대로 물건 건드리지 마시오.”
삼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집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는 안방과 마루와 부엌 현관, 두개의 또 다른 방을 눈 여겨 보았다. 그 중 한쪽 방은 서재였는데 동규가 뒤따르며 그를 만류했다.
“여긴 그냥 제 개인 서재입니다. 굳이 여기까지 설치를 해야 될지는 모르겠는데.”
“아 그렇습니까.”
남자는 그곳을 포기하고 다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별다른 곳을 찾지 못하고 좀 헤매자 이내 눈에 띄는 장소를 발견했다.
“저기는 어딥니까?”
“세탁실이요. 저기에 설치할 생각입니까?”
“글쎄요, 겪어본 바로는 주로 은폐된 곳에서 많은 일들이 발생 해서 말이죠.”
다층적 의미로 내뱉은 말이었지만 동규의 반응은 의외였다. 그는 몸을 움츠리며 한껏 공포에 사로잡힌 얼굴로 떨고 있었다. 그리고 삼훈은 자신의 지난 3일간의 행적을 떠올렸다.
그는 회사에서 비이상적인 언동과 행동으로 상당한 고충을 겪고 있었다. 사내 위신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그를 극도로 기피하는 분위기마저 형성되는 중 이었다. 회사 내에서도 슬슬 골칫거리로 여기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하루아침 갑작스레 변한 인상은 아니었다. 내부적인 변화에 의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서서히 자연스럽게 이어 온 듯 했다. 삼훈은 좀 더 조사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리고 회사 임원들의 의견을 통합해 한 가지 공통점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동규의 퇴원 이후부터 변화가 있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던 것이다. 그 길로 몇 가지 의견을 더 수렴해 교통사고로 머리가 크게 다쳤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그리고 이런 일을 벌인 의중 또한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한 마디로 미친놈이다, 의처증이 병적으로 도진 남자. 박 사장과의 통화로 전액 환불을 조건으로 대충 얼버무린 후 돌아오라는 지시를 받은 것도 어제였다. 삼훈은 이제 그럴 참이었다. 이 정신 나간 남자의 얼굴을 보는 것도 지쳐가고 있었다. 그의 휴대폰이 부르르 울린다. 때 마침 울린 전화였다.
“여보세요. 아, 박 사장님. 갑자기 무슨 일입니까? 예? 그게 정말입니까? 이거 곤란하게 됐군요.”
삼훈은 능청스레 연기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가 눈치를 살피나 동규가 의심하는 기색은 없었다. 더욱 안심이 되어진 삼훈은 목청껏 떠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제 와서 그러면 어떡합니까. 제 입장도 있고. 어쩔 수 없는 건 알지만 이건 좀 도리가 아니죠.”
동규가 마침내 심상치 않은 눈빛으로 그에게 다가 들었다.
“사장님 잠시만요, 손님이…….”
“무슨 일입니까, 갑자기?”
동규의 물음에 삼훈은 수화기를 가려 막고 말했다.
“그게, 참, 갑자기 집중 단속 기간이라지 뭡니까. 아시다시피 저희가 하는 일이란 게 합법적인 일들이 아닌지라……. 단속 기간 중에 갑자기 확 띈 매상이 그 사람들 눈에 좋아보일 리 없지 않겠습니까. 아주 가게를 이잡 듯 뒤지는 게 독한 놈들이에요. 이중장부고 비밀 장부고 간에 얄짤 없어요. 그래서 손님께 전액 환불을 해드릴 테니 장비 챙기고 빨리 돌아오라고 하시는군요. 참 입장 곤란하게 말이죠.”
그 순간 삼훈은 그렇게 큰 눈은 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동규가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아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제 와서 안된다니. 어, 이거 사람 우롱하는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게 됐습니다. 수고스러우시겠지만 다른 업체를 찾아 보시든가 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러자 동규가 성을 내며 그에게 엉켜 들었다.
“이 씨발 새끼야. 지금 어디서 개수작이야. 빨리 설치 안해?”
삼훈은 들켰나 싶어 움찔했지만 금방 생각을 고쳐먹었다. 아무리 보아도 그런 의도로 말한 것 같지는 않아서였다. 금세 마음을 가다듬으며 그도 맞받아친다.
“아 거 말이 좀 심하시네. 누굴 배알도 없는 병신새끼로 아시나.”
동규를 도로 떼어놓으며 그가 엄포를 났다. 그러나 동규는 그칠줄 모르고 실랑이를 벌였다.
“안돼 이제 늦어. 더 이상은 안돼.”
“뭐가 안 되는지는 모르겠는데.”
삼훈이 동규를 자빠트리며 말했다. 볼썽사납게 고꾸라진 동규는 짧은 신음성을 냈다.
“자꾸 이 개지랄하면 뒤지는 것만 아시오.”
손을 탁탁 털어낸 삼훈은 장비를 챙기려 몸을 움직였다. 그때 동규가 바닥을 기다시피 접근해왔다. 질긴 새끼라고 생각하며 인상을 찌푸린 삼훈은 소매를 걷어 붙이는 중에 뜻밖의 말을 들었다.
“돈을 더 줄게, 응? 원하는 만큼 줄테니까 제발, 제발.”
하던 행동을 멈추며 삼훈은 되물었다.
“방금 뭐라고요?”
한차례 침 넘기는 소리가 난 후에야 대답이 이어졌다.
“돈 더 준다고.”
그는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혼자 의연히 결정할 문제는 아닌지라 곧장 휴대폰을 빼들었다.
“잠깐만 있어 봐요, 일단 사장님한테 얘기해보고. 어쩌면 사정이 달라질 수 있으니까.”
통화를 걸자 박 사장이 바로 전화를 받았다. 삼훈이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자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어떻게 합니까 사장님?”
재촉을 해보아도 별다른 대답이 들리지 않자 초조해졌다. 삼훈은 심장이 쿵쾅 울리는 것을 느끼며 대답을 기다렸다. 이윽고 박 사장이 신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위험수당이라고 삼백 더 받고 기한을 정해라. 이 기간이 되면 회수한다고 하고. 거부하면 그냥 와라. 우리도 그 정도 위험수당 없이 일 못한다 말하면 되겠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전화를 끊으며 삼훈은 동규를 바라보았다.
“잘됐습니다. 박사장님도 그 정도 성의시라면 저희가 위험부담을 안고 해드리겠답니다. 다만 위험수당 삼백 얹고 거기다 기한을 정해 때가 되면 회수해 오시라고 하시는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몸을 추스르며 일어선 동규는 바싹 마른 입술을 축이더니 말했다.
“그렇게 할테니까 얼른, 빨리 설치나 해.”
삼훈은 비죽 웃으며 턱을 뺐다.
“알겠습니다. 그럼 여기서 일시불로 계산해주실까요?”
이후, 카메라 설치를 끝내고부터 삼훈은 부차적인 일거리가 생겼다. 보름 동안 그가 남몰래 동규를 감시하게 된 것이다. 혹시나 모를 불상사에 대비하여 발 빠르게 대처하기 위함이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였을 때 경찰이 들이닥쳐 온 집안을 뒤진다면 불똥은 자연스레 자신들에게 튀기 마련이었다. 사전에 대비함이 옳았다. 교묘히 감춰두었으나 들통나는 건 시간 문제였으니까.
“그건 그렇고 이틀 동안 코빼기도 안비치네.”
그가 차에서 빵 쪼가리를 입에 뜯으며 중얼거렸다. 쉬지 않고 집을 감시한 탓에 눈이 몹시 피곤했다. 제 때 식사도 못해 굶기도 태반이었지만 그래도 삼훈이 딱히 불만을 느끼지 않았다. 이번 일로 큰 돈이 보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그 돈으로 무엇을 할지 상상하며 시간을 보내었다. 핸드폰이 울리자 상념에서 퍼뜩 깨어났다.
“아, 예 여보세요.”
“일은 잘 되가냐?”
박 사장의 목소리였다.
“뭐 아직까지 별 탈은 없습니다.”
한 숨 놓인다는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그래? 그거 잘됐군. 아무튼 그 미친놈 잘 감시하고. 확 돌아서 지 마누라라도 제끼면 괜히 우리까지 좆될 수 있으니까. 이번 일이랑 좀 다르긴 해도 저번에도…….”
“장비 가져가서 다른 데 불법 설비한거 말이죠? 그냥 장비만 사간 것부터 의심했어야 했는데 그때 솔직히 저나 사장님이나 아주 돈에 헤까닥 하지 않았습니까?”
수화기 너머 웃는 소리가 왁자하게 들렸다.
“그래도 씨발 한 몫 든든히 챙겼잖아. 고생은 좀 했지만. 아무튼 한 눈 팔지 말고 감시 잘해. 그 새끼 니가 말한 대로라면 미쳐도 단단히 미친 새끼니까.”
“아 걱정 하지 마십쇼.”
“알았다, 암튼 이번에는 무턱대고 쑤시고 다니지 마라. 괜히 니 꼴리는대로 꼬쟁이짓 하지 말라고.”
“알았다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통화는 끊어졌다.
핸드폰 벨소리가 실내를 뒤흔들었다. 헤드폰을 낀 채 고개를 까딱이던 유미는 번호를 확인하고는 히스테릭한 증상을 보였다.
“아 씨발 또 왔어.”
옆에 누워있던 젊은 남자가 막 잠에서 깨어난 목소리로 물었다.
“누군데 그래?”
“있어, 정신병자같은 아저씨 한명.”
“뭐? 너 아직 그 짓 하고 다녀?”
유미는 힐난하는 눈초리로 남자를 쏘아봤다.
“남의 일에 신경 끄시지.”
“완전 골때리네, 씨발년.”
그녀는 발길질로 남자를 침대에서 떨어뜨리고는 전화를 받았다. 이어 톤 낮은 음성으로 뇌까리듯 말했다.
“아저씨, 제발 잘 들어. 이제 그만 전화해, 어? 정말 하루에도 몇 통씩 미칠 것 같다고 나.”
그러자 수화기 너머 다급한 목소리로 동규가 말했다.
“유미야, 제발 하루만. 하루만 만나줘. 이제 더 이상 전화 안 할 거니까, 응? 너한테 정말 보여줄게 있어서 그래. 너한테만, 너한테만 보여주고 싶다고. 만나줘 제발 부탁이야.”
유미는 욕지거리가 치미는 것을 억지로 삼켰다. 그녀의 인내심이 점점 바닥을 드러냈다.
“이러지마, 지쳤어 정말. 신고하기 전에 그만둬.”
그때 남자가 유미의 전화를 홱 낚아채더니 거침없이 욕설을 쏟아냈다.
“이 미친 새끼야, 넌 씨발 뭐 하는 새끼야? 유미 하는 말 못알아 처먹어? 니가 전화하는 거 역겹다고 개새끼야. 존나 토나올 것 같다는데 귀에 좆을 박았나 왜 계속 전화하고 지랄이야. 나이 처먹고 할 일 없으면 입 처닥고…….”
전화가 빠르게 끊겼다. 남자는 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휴대폰을 노려보다 바닥에 집어 던졌다.
“아이 씨발 새끼, 말하고 있는데 전화를 끊고 지랄이야!”
그 와 동시에 유미의 발이 남자를 걷어 차버렸다. 그녀는 선병질적인 비명을 질러대며 남자를 밟아 댔다.
“넌 새끼야 이게 얼마짜린데 집어던지고 지랄이야!”
“아아, 잘못했어. 잘못 했다구.”
남자의 비명소리는 무저갱의 심연처럼 깊이 울려 퍼졌다.
일요일 낮, 오후의 뜨거운 햇살이 그렇게 저물고 있었다. 늦은 점심을 먹으며 남자는 유미에게 그간 궁금해 왔던 것을 물었다.
“근데 그 새끼는 뭐야, 대체?”
“응?”
유미는 파스타 면발을 미처 삼키기도 전에 웅얼거렸다.
“아까 전에 전화 온 남자 말이야. 니 입으로 그랬잖아. 제정신이 아니라며.”
“아.”
후루룩 깔끔하게 빨려 들어간 면발을 우물댄다. 극적으로 삼키는 표정을 지어보인 후에 유미는 그 질문에 대답했다.
“좀 예전에 만났던 아저씨인데. 그 때는 그래도 제정신었거든.”
“아 그래? 너 웬만한 아저씨랑은 안 만나잖아. 근데 왜 저딴 놈이랑…….”
“그 때는 멋있었거든, 이 아저씨.”
“뭐?”
갑작스레 둔기로 가격당한 표정을 지으면서 남자는 유미를 보았다.
“제정신이었을 때는 멋있었다구. 돈 많고, 매너 좋고, 누가 봐도 홀딱 넘어갔을 타입이었단 말이야.”
“많이 괜찮았나 보네.”
남자는 우걱우걱 음식물을 씹어 삼킨다. 그러고는 파편을 튀기며 물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병신같이 됐다냐?”
그녀의 얼굴로 주황색 파편이 삽시간에 불어난다.
“아 씨발 그걸 내가 어떻게 알어!”
유미는 식탁 아래로 정강이를 걷어차며 화를 냈다. 그들은 곧 식사를 끝냈다.
어느새 저녁 어스름은 깊이 스며 번졌고, 바깥바람은 좀 더 차갑게 식었다. 오후의 태양이 거짓이라는 것처럼 찬바람은 웅웅 대며 사정없이 몰아쳤다. 남자는 나갈 채비를 했다.
“저녁 잘 먹었어. 아니 점심이었나?”
“뭐가 됐든, 알아 들었어.”
남자는 피식 웃었다.
“다행이네. 아무튼 나 간다.”
“조심해서 가.”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현관문을 나섰다. 문을 뒤로 하고 멀어진 남자를 생각하며 유미는 한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섰다. 그대로 숨이 멎어버린 것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오랫동안 서 있던 그녀를 일깨운 건 한통화의 전화였다.
“뭐야 벌써 전화한거야.”
기쁨에 겨운 목소리로 휴대폰을 찾아 서성이던 유미는 번호를 보자마자 표정을 굳혔다. 동규였다. 망설이던 유미는 결단을 내리라 결심하고는 슬라이드를 밀어 올렸다.
“이러다 정말 깜방 처넣는 수가 있어, 아저씨. 왜 또 전화한거야?”
“꽤 성질 더러운 애인을 뒀구나.”
“뭔 상관이야.”
큭큭 낮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기분 나쁜 웃음소리라고 유미는 생각했다.
“뭐 됐어, 좋아. 그보다 진짜 안 만날거야? 밤이고 낮이고 널 괴롭히는 건 문제도 아니야. 단지 너는 내가 보여주는 걸 보기만 하면 돼. 그러면 끝이야. 더 이상 너 같은 썅 년 한테 관여하지 않을거라고.”
유미는 울컥 부아가 치밀었다.
“근데 대체 뭘 보여준다는 거야, 그리고 왜 내가 보지 않으면 안되는건데?”
싸늘한 말투였지만 그녀는 최대한 감정을 표출시키지 않으려 애섰다. 그리고 잠자코 수화기에 귀를 붙였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일부러 뜸 들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을 즈음, 그가 입을 열었다.
“말로 하기 힘들어. 어디까지나 미친 짓거리로 생각 할테니까. 하지만 네가 와서 내가 이룩한 업적을 눈여겨 봐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최초 증인이 되었으면 하는 것 뿐이야. 여기로 와서 이걸 보고 내 행위에 대한 증명을 하는 거야 너는. 그거면 돼. 간단한 일이야. 힘들 일은 아무 것도 없어.”
너무나도 차분한, 진실된 어조의 말들은 유미를 혼란시켰다. 그녀를 쥐고 흔든 말들은 이지적이고도 정연했다. 마음의 기저에 내깔린 적개심이 순간 무뎌지고도 남음이었다. 유미는 한차례 머리를 세차게 흔든 후 다시 마음을 다 잡았다.
“그렇게 애매한 말로 설득할 생각은 하지마. 날 우습게 생각하는 모양인데…….”
“너야말로 날 우습게 생각하는데 이 씨발년아, 난 이보다 더 한 짓도 할 수 있어. 이렇게 애원하고 그러니까 네가 뭐라도 되는 거라고 착각하는 모양인데 이 개같은 년아. 당장 후회하게 해줘? 하긴 머리가 안돌아가니까 씨발, 돌아가며 몸이나 대주고 있는 거 겠지.”
소름이 끼쳤다. 살갗이 오돌토돌 일었난다. 전화기를 붙잡지 않은 손으로 다른 팔을 감싸들며 그녀는 생각했다. 유미는 지금 내뱉은 말들이 사실일지 가늠해보지만 판단이 흐려진다. 이정도로 섬뜩한 느낌을 자아내는 악담을 결단코 들은 적이 없었다. 그리고 사실 굳이 머리를 굴려 생각을 할 필요도 없었다. 생리적 반응으로부터 진실을 유추하기란 그리 힘든 일도 아니었다.
“알았어, 그러니까 좀 닥쳐. 가서 봐줄게. 그러면 되는 거 아니야?”
그 말에 짤막한 웃음소리가 났다. 흡족한 듯 지은 웃음은 낮지만 높이 울었다.
“진작에 그럴 것이지, 사람 성질이나 돋구고 있어. 아무튼 너 같이 사람 한번 무시하면 한도 끝도 없이 무시해대는 쓰레기같은 여자들은 다 조져나야 돼. 아무튼 씨발년아 당장 우리집으로 와라. 지금이 여덟시니까 못해도 아홉 시까지 와라. 일분 일초라도 늦으면 각오해 두는 게 좋을 거다. 이 씹년아.”
전화는 일방적으로 끊겼다. 부들부들 떨며 유미는 자신이 손에 쥔 휴대폰을 지릅떠 본다. 올 블랙. 슬라이더 폰. 손바닥만한 크기. 이 작은 몸체에 자신의 추잡한 일들의 전말이 담겨있다. 몇 명이나 되었던가. 백 여명에 달하는 남자들. 그 전화번호. 바뀌거나 혹은 늘어나는 전화번호들. 그 외 알선책으로 선이 닿아있는 수많은 업체 간의 전화번호들. 그 이름들. 이름을 대신한 모든 직함들. 현기증이 난다, 유미는 이런 것들 때문에 번호조차 바꾸지 못했다. 너무나도 안일한 대처였다.
감정 없는 눈빛으로 그녀는 손이 저절로 들리는 것을 응시한다. 그대로 세차게 뺨을 때린다. 불길이 스친 듯한 통증과 함께 귓 속에 이명이 우러났다. 온갖 자책의 말들이 쏟아져 마음을 할퀸다. 그만해. 이럴 필요 없잖아. 이런 사람들은 여럿 있어 왔으니까. 그녀는 스스로 변명을 해보지만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꺼림칙한 기분을 끝내 떨쳐낼 수 없었다. 머지않아 공포를 키운 감정이 자신이 짓누를 것이 분명했다.
유미는 뺨을 발갛게 물들이고 지쳐 쓰러졌다. 그녀는 처음 맞대한 이 생경한 공포 앞에 치를 떨었다. 속절없는 절망감으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으로. 그렇게. 하염없이.
유미는 걸었다. 그가 사는 아파트 단지가 눈 앞에 펼쳐졌다. 높은 분양가로 입주율이 더딘 곳이었다. 드문드문 켜진 불빛 들이 고립된 등대와 같아 보였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걸었다. 경찰에 신고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미 전에 스토킹으로 멋모르고 신고했다 시달리며 끝난 기억이 있었다. 미성년자의 나이가 아니었으면 그녀도 법적 처벌대상임은 뻔했다. 유미가 그 일로 한 가지 원칙을 세워두었다면 경찰과 관여되어 좋을 것은 없다는 거였다. 그 원칙은 지금의 상황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두근대는 심장소리에 오감이 멎을 지경이었지만 그녀는 어느 때 보다 신경이 예민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제 끝내는 거야. 그것을 끝으로 생각을 지웠다. 걷는데 온 집중을 쏟는다.
그녀는 길 위를 걸었다.
삼훈은 유미를 보았다. 착각이 아니었다. 저 년이 왜 여기 있는거야. 온종일 단지 입구를 지켜 앉은 그가 그 모습을 놓칠 리 만무했다. 차에서 내려 황급히 뒤를 쫒는다. 그리고 그녀를 부르려다 관두고 내처 미행을 시작한다. 여기서 서성거릴 이유라면 동규 외에 달리 생각할 거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삼훈은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으며 조용히 발소리를 죽였다. 그가 감시를 시작한지 열흘 무렵이었다. 반달이 낮게 하늘에 걸리었다.
유삼훈은 그녀를 앞질러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비교적 감시가 허술한 곳임에도 아파트 본동과 엘리베이터가 바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에게는 더 없는 장소였다. 될 수 있는한 cctv의 범위를 피해 엘리베이터에 접근한다. 카드키나 기타 보안장치가 이쪽 까지 미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모조리 카메라로 보안체제를 대체하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손쉽게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며 이내 혀를 내둘렀다. 전망형 승강기였다.
삼훈은 15층에 버튼을 눌러 떼며 승강기가 중력을 벗어나 오르는 것을 느꼈다. 살짝 메스꺼운 기운이 속에서 올라왔다. 그는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그런 거라 여겼다.
유미는 그때 아파트 입구에 도착했다. 보안 장치는 사전에 손을 썼는지 깨끗이 풀려 있었다. 그녀는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기억을 더듬어 승강기에 몸을 밀어 넣는다. 15층 1504호. 생생하리만치 실제적인 기억의 한 자락.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층 버튼을 누른다. 승강기가 중력을 벗어나 올랐다. 속이 메스꺼워졌다.
그가 승강기에서 나왔을 때 통로는 조용했다. 쥐죽은 듯 냉랭한 적막만이 감돌았다. 모든 소리가 차단된 공간만 같다. 그러한 의구심을 가지며 삼훈은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그 순간 바닥에 닿은 구두소리가 맹렬히 적막을 갈라놓는다. 그는 내리 깔린 어둠 깊숙이 음향의 파문이 번져나가는 환각에 사로잡힌다. 정신 차리자. 식은땀이 배어나는 손을 바지자락에 닦아내며 엘리베이터 홀로 걷는다. 그가 몸을 숨김과 동시에 승강기가 도착했다는 음성음이 들려왔다. 삼훈은 어둠 속에 더욱 잠겨 들었다.
드륵, 문이 열리고 엘리베이터 너머 새하얀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곳에서 또각 거리는 발 소리 하나 빠져나와 통로에 잦아든다. 유미가 그를 앞질러 가는 것을 소리로 알아챈 삼훈은 기척을 숨기고 걸었다. 적당한 거리, 적당한 보폭수를 유지하며 어둠 속에서도 눈을 번뜩인다.
유미는 이윽고 1504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긴 호흡을 가다듬으며 긴 손가락이 초인종을 누르는 것을 본다. 띵동. 클래식한 벨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려왔다. 문은 곧장 열렸다. 그녀는 활짝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간다. 삼훈은 근처에서 사태를 관망했다.
유미는 우뚝 섰다. 자동 감지등의 불빛이 현관을 내려 비추고 있었다. 가까이 놓인 화분의 식물줄기가 높이 솟았다. 열악한 채광조건을 이겨내려 애쓴 성장 분투가 눈에 그려진다. 식물은 제각기 생존 환경을 이겨내며 성장을 하고는 한다. 동물과 달리 고정된 위치에서 한정된 자원으로 생을 이어 가다보니 높이 솟든 넓은 잎을 가지든 성장과정에서 얻는 모습들이 상이하다. 달리 말하자면 생 한가운데 치열했음을 보여주는 증표였다. 이것이 부차적으로 사람에게도 적용 가능하다면 그녀 앞을 가로 막아 선 동규는 그 일례로 들기에 너무나도 완벽했다.
유미는 제일 먼저 그에 대한 연민을 느꼈다. 무엇이 참담하게 그를 망가뜨려 놨을까. 굳은 피로 얼룩진 몰골에서는 심한 악취가 풍겼다. 수염이 덥수룩이 자란 얼굴은 광기로 뒤덮여 섬뜩함을 자아냈다. 그녀는 그 모습에서 어딘가 설명키 힘든 그만의 생존방식이 도사리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이 무서워졌다. 대체로 정상적인 지적수준과 의식 상태로 이런 지경까지 이른 것은 수많은 자기 합리화를 거친 결과다. 이렇게 되기까지 그만의 생존 조건이 무엇이었을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단지 유미는 그의 뒤편으로 경악할만한 사실 하나가 숨겨져 있음을 어렴풋이 느낄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밝혀지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보여주고 싶었던 게 이거다.”
동규는 한 발짝 비켜섰다. 유미는 보았다. 조각나 흩뿌려진 살점들. 박살난 시체. 막칼 하나가 머리로 추정되는 정수리 쯤에 박혀 있는 것을. 코끝을 간질이던 피비린내의 실체를 목도하는 기분은 비현실 그 자체였다. 그녀는 감정적으로 동요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손끝부터 떨려오는 공포를 통제하기란 불가능하다. 자신이 주저 앉혀지는 것만은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내가 죽였다. 이 괴물을.”
유미는 흔들리는 시야 너머로 그를 보았다. 농담하는 것 같지 않다고 생각했다. 진심으로 그렇게 내뱉고 있었다. 동규는 계속 지껄였다.
“증인이 필요했어. 내가 미친 게 아니라고. 네가 그 증명을 해주는 거다. 세상에 알려서 내가 한 거라고 말이야.”
“왜, 대체 왜 그렇게 해야 되는데?”
그가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봤다.
“몰라서 물어? 내가 떠들어 봤자 다 날 어떻게 보는지 알잖아. 둘 이상이면 그래도 믿어주겠지. 이 괴물 때문에 내가 어떠한 고통을 겪었고 내가 정체를 알아내어 어떻게 처벌했는지에 대해서 말이야. 이거는 나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알려야 돼. 이런 놈들이 있다는 거. 그래서 우리 모두 목숨이 위협받고 있다는 거에 대해서.”
그는 숨을 몰아셨다. 유미는 시선을 떨어트렸다. 시체도 그의 모습을 볼 용기도 더 나지 않아서였다. 동규는 다시 말했다.
“이 놈들은 우리 몸을 침투해서 지배한다고. 정신 조작까지 하는 놈들이지. 까딱했으면 나도 속아 넘어 갔을 뻔 했는데 이 비디오 때문에 간파해낼 수 있었다.”
동규는 비디오 테잎을 들어 보여주었다. 그는 유미에게 바싹 다가 들었다.
“이걸 주겠다. 여기에 모든 내용이 담겨 있으니까. 말로 설명하기 보다 눈으로 확인하는 게 낫겠지. 만약 삼 일 내로 네가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 네 년 집을 찾아가겠어. 그땐 진짜 죽을 각오를 해두라고.”
“하…하지만 저건 그냥 시…….”
유미는 ‘시체일 뿐‘이라고 말하려고 했으나 급하게 뒷말을 삼켰다. 괜한 말로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이제 꺼져. 볼 일은 끝났다.”
유미는 그에게서 비디오 테잎을 건네 받았다. 동규는 뒤돌아서 집 안으로 들어갔고 그녀는 집에서 부리나케 뛰쳐 나왔다.
‘제정신이 아냐. 완전히 미쳤어.’
그녀의 가슴이 헐떡였다. 숨이 끊어질 것 같은 기분에도 유미는 필사적으로 휴대폰을 찾아 꺼냈다. 경찰에 신고하고 싶어진 건 그녀로서도 난생 처음이었다. 그리고는 새된 소리로 소리쳤다.
“사람이 죽었어요, 빨리 좀! 경찰을!”
말을 미처 끝내기도 전에 누군가 그녀를 제지했다. 불쑥 튀어 나온 억센 손에 유미는 구석으로 끌려갔다. 입이 틀어 막혀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손에서 휴대폰이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그녀는 있는 힘껏 저항했다. 붙든 손에는 힘이 점점 실린다.
“진정해. 유삼훈이다. 박 사장님 가게의.”
그 소리에 유미는 저항을 멈추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그녀의 몸이 풀려났다.
“아, 어? 삼훈 씨가 여긴 어떻게?”
유미가 물음에 삼훈은 그동안의 사정을 설명했다.
“그, 그것 때문에 여기 있었던 거에요?”
“그래, 그 보다 대체 저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
그는 급히 자초지종을 캐물었다. 유미는 한차례 몸서리친 후 말을 이었다.
“저 새끼 완전히 미쳤어요. 사람을 죽여 놓고 괴물을 잡았다고……. 정말로 자랑스레 얘기하지 뭐에요. 진짜 완전 소름끼쳐서. 그리구 이걸 자기가 한 짓을 세상에 알려 달래요. 여기 비디오 테잎에 모든 걸 담아났다면서…….”
유삼훈의 눈에 일순 영채가 돌았다.
“비디오 테잎이라고?”
“네, 비디오 테잎.”
그녀는 말하면서 문득 생각난 듯이 두 손을 내려 보았다. 아무것도 쥐어져 있지 않았다. 그제야 유미는 휴대폰마저 떨어뜨린 것을 알아챘다.
“아, 어디다 떨어뜨렸나 보네요.”
병신같은 년. 삼훈은 도리어 유미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괜찮아요. 방금 경찰에다 신고도 했고, 그 미친놈도 잡힐거에요. 아 그보다 빨리 핸드폰을 찾아야 하는데. 잊어먹으면 안되는데.”
“경찰에 신고했어?”
“네 금방…….”
속에 담아둔 욕설이 정말로 튀어나올 뻔했지만 유삼훈은 그럴 시간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리를 벗어나 동규의 집으로 달렸다. 유미가 부르는 소리가 있었으나 무시한다. 이제 카메라 회수는 물론 비디오 테잎까지 찾아야 했다. 일이 생각보다 꼬였음을 직감하며 경찰이 도착하기 까지 모든 일을 끝내야 했다. 그는 문 앞에 가까워지자 갑자기 뛰기를 멈췄다. 무언가 그의 눈에 띈 것이다. 다름 아닌 비디오 테잎이었다. 비교적 쉽게 발견한 것에 대한 쾌재도 잠시, 삼훈은 난간 밖으로 테잎을 집어 던졌다. 완전히 떨어져 박살날 때까지 그의 눈은 한시도 떨어질 줄 몰랐다.
유미가 떠난 시점부터 동규는 서재에 틀어박혔다. 몰카가 찍어온 영상을 받는 수신 장비가 방안에 모니터와 함께 놓여져 있었다. 그는 지난 몇 일간의 일들을 떠올렸다. 설비를 끝내고부터 동규는 출근도 하지 않고 서재에서 하루 종일 모니터를 감시했다. 잠도 음식도 최소한으로 정한 채 그는 의심갈만한 모든 것들을 찾아 헤맸다. 그러나 쉽사리 발견하지 못했었다. 그때에 아내는 그에게 완전히 지쳐있는 상태였다. 자신을 격리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동규는 걸어 잠근 문밖으로 종종 아내의 목소리를 엿들었다. 밤중에 문을 사이에 두고 지껄이던 아내의 목소리를 그는 잊을 수 없었다.
“허튼 수작 그만 부리고 나와. 너는 날 못 이겨. 네가 가진 모든 걸 빼앗을 거야.”
아내 명주는 그 말을 수도 없이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그는 물러서지 않고 그 말을 듣고 또 들었다. 밤을 새어서 아침이 밝아 올 때 까지. 동규는 서서히 아내가 인간이라는 인식 자체를 지워갔다. 낮에는 평범한 주부로 돌아왔다. 가끔 집 안에 낯선 남자가 찾아 들었고 그 사람들은 자신의 신변에 대해 아내와 떠들다가 사라졌다.
동규는 초조감을 느꼈다. 카메라 회수 기한은 점점 다가 왔고 발견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명주가 눈치 챈 것은 아닐까 지레 겁을 먹었지만 동규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아내의 태도는 어디까지나 정신병자의 이상행동을 대하는 태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밤에는 그녀, 본연의 모습을 드러낸다. 자신을 완전히 미쳤다고 여기지 않는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정신조작. 그 단어가 처음 생각난 건 그가 틀어박힌지 사흘째 아침이었다. 자신이 이렇게 미쳐버리게 된 것은 아내가 직접적 요인이며 그 방아쇠를 명주가 당긴 것이나 다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여태껏 아내에 대한 자신의 감정, 밤중의 그녀 태도 등.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그것은 곧 확신으로 굳혀졌다. 확신은 또 다른 가정의 꼬리에 잇닿고 확산된다. 인간 이외의 존재. 공상영화. 신체 강탈자들. 머리 속에 맴도는 이미지들은 하나의 결론으로 치닫고 그는 명쾌한 논리로 설명할 수 있는 존재로 매듭짓는다.
‘외계 생명체’
인간을 숙주로 삼는 미지의 군소 생물체. 인간 사회에 완전히 녹아든 이들은 나름의 직위를 획득하기 위해 연신 다른 인간들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사회의 부유계층인 자신이 타겟이 된건 단순한 우연만이 아니었다. 그러한 모든 상황 정립을 세우자마자 동규는 미친 듯이 전화를 걸어댔다. 유미였다. 처음 몇 번은 받아주는 그녀였지만 얼마 후부터 수신거부를 했다. 단지 만나서 이 모든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참이었지만 유미는 만나주지 않았다. 이따위 년에게조차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빈정 상한 그는 더 끈질기에 유미에게 달라붙었다. 다른 사람에게 연락을 취해볼 수 도 있었을 테지만 동규는 단순히 그러한 이유로 유미를 괴롭히는데 골몰했다. 자신의 번호가 수신이 차단된 후로는 집안이 빈 틈을 타 공중전화를 돌았다. 어떤 경우에는 새로 번호를 바꿔 끊임없이 전화를 걸었다. 이 같은 일이 더욱 심해진 건 나흘 째 명주를 제 손으로 살해하고 부터다.
엿새째 무렵, 그는 처음에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무심코 모니터에 잡힌 명주의 모습에 그는 순간 섬뜩함을 느꼈다. 세탁실에서 명주는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노려보고 있던 것이다. 그녀가 카메라를 알아차린 사실에 황망해진 그는 곧 숨이 막힐 듯 한 장면을 눈 앞에 두게 되었다.
처음에 그녀의 얼굴에 균열이 간다 싶더니 찰나에 세로로 쩍 갈라졌다. 벌어진 틈으로 무수한 촉수들이 비집어 나와 몸을 떨었고 이내 카메라 영상이 끊어졌다.
동규는 앉은 자리에서 그저 멍하니 식은땀을 흘렀다. 뒤이어 문이 몇 번 쾅쾅 울렸다. 귓전을 때리는 소음에 그는 돌아볼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모니터를 주시하며 귀를 기울인다. 문이 부서져 나가는 듯 한 굉음. 짐승 같은 울부짖음. 우레와 같은 그 소리. 헛구역질. 한 낮에 동사할 것처럼 부들부들 떠는 동규는 깔고 앉은 의자를 들고 내리쳤다. 두어 번 내리치자 의자는 산산조각이 났다. 더 기다리지 않고 그는 주방에서 칼을 집어 들고 나왔다. 생선을 토막낼 때 쓰는 그 칼. 그는 그 칼로 아내를 토막 냈다. 뜨거운 핏덩이가 그의 얼굴을 적셨다. 그렇게 그는 괴물을 죽였다.
어느 순간 그 날의 흥분이 전신에 몰아친다. 더 참지 못하고 동규는 서재를 나왔다. 그리고는 괴물의 주검에 서서 비릿한 웃음을 짓는다.
“이 씨발것들아. 난 평생을 살아오면서 져 본적이 없어. 하물며 너희 같이 하찮은 것들한테 내가 당할 성 싶었나. 엉?”
동규는 침을 뱉으며 담배갑을 꺼내 들었다. 근 몇 일 간 늘어난 건 담배 뿐이었다. 그는 담배를 피우며 흥분을 가라앉히려 했다. 평정심을 되찾고 이제 이것들이 세상에 알려지기만을 기다렸다. 유미가 잘해주겠지. 스스로를 달래며 폐부 깊숙이 연기를 빨아들인다.
그리고 그때, 닫혀있던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등 뒤로 들렸다. 아무 생각 없이 뒤돌아 본 동규는 그만 헛숨을 들이켰다.
현관에 또 다른 괴물이 서 있었다. 그는 피우던 담배를 떨어뜨렸다. 정수리에 박혔던 칼이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한 남자가 걸어왔다. 그는 반사유리 너머를 지켜보는 사내에게 오는 참이었다. 사내는 먼저 그 남자를 알아보고 반색했다.
“아 김성식 씨. 한참 기다렸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장기 과장님.
김성식은 악수를 하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래 어떻게 뭐 좀 알아낸 거 있습니까?”
이장기는 유리창 너머 두 사람을 가리키고는 말했다. 그 안에는 연구원으로 보이는 한명과 안동규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있었다. 동규는 얼굴 전체 전극을 붙인 채 피부전류실험을 진행 중이었다.
“글쎄요 직접 머리를 열어 뇌를 들여다 보지않는 이상은…….”
“이 사건이 항간에 떠들썩한 거 아시지 않습니까. 온 나라 이목이 여기 집중 되어 있습니다. 뭔가 적절한 병명이라도 갖다 붙여야 저희도 뭐 보고하고 말게 있을 거 아닙니까.”
이장기는 안달하며 성식에게 말했다. 그는 헛기침을 내뱉으며 대답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그가 지금 실험에서 보이는 반응이 실제라는 겁니다. 근데 이 사람이 보니까 일전에 사고로 머리를 크게 다쳤더군요. 그래서 저희도 막연히 짐작을 하고 있는게……. 카프그라 증후군입니다.”
“카프그라 증후군이요?”
“예, 관자엽의 방추이랑 손상으로 입는 건데요. 저 사람한테 지금 하는 실험도 그것을 입증하기 위한 실험입니다. 그리고 정말로 저 사람은 자신의 아내를 괴물이라고 인식하고 있더군요.”
이장기는 자세를 고치며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게 가능한가요?”
“예,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교통 사고 후 자기 부모님이 가짜라고 떠들어대는 사람도 있었으니까요. 문제는 의식자체는 멀쩡하죠. 말짱한 정신으로 그러한 상황을 부정하게 된다면 망상적인 집착으로 이어지는 거죠. 대체 이 사람이 내가 알던 그 사람이 맞나 하고요. 하지만 뇌는 그것을 거부하죠. 그 사람은 당신이 알던 사람이 아니라고. 그리고 그 집착이 발전하게 되면 모든 반대증거들이 그것들을 수용하기 위해 왜곡됩니다. 그 과정에서 편집증, 정신분열증을 동반할지도 모를 일이고요. 심지어 자신을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존재하는 마당에 아내가 괴물이라고 떠들어대는 게 그렇게까지 웃길 일은 아닙니다.”
“그럼 결국은 정신병이라는 거 아닙니까?”
“그렇죠 뭐. 사람 두 명을 끔찍하게 골로 보낸 일을 무슨 수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 말을 끝으로 이장기 과장은 한참을 숙고하는 모습으로 일관하다가 입을 열었다.
“아까 그거 다시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카프, 뭐라던.”
유리 너머 방 안에는 같은 실험을 끝도 없이 되풀이 하고 있었다. 아내 명주의 사진과 유삼훈의 사진이 동규의 눈 앞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물었다.
“대체 이딴 실험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 제 말을 못 믿겠으면 당장 그년놈들을 부검해보면 될거 아닙니까?”
눈 앞의 남자는 귀찮은 투로 말했다.
“아 그것은 상부에 알아서 할 일이고요. 당신은 그냥 이 실험에나 집중하세요.”
노골적인 무시하는 말투. 동규는 기분이 더러워졌다.
“정말 제 말을 안 믿는 겁니까?”
남자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 글쎄, 믿고 안 믿고는 내가 결정할게 아니라까요. 게다가 그런 얼토당토 않은 얘기를 지금 나보고 믿으라는 겁니까? 잔말 말고 이 사진이나 봐요.”
명주의 사진이 들어 올려진다. 동시에 동규는 씹어 뱉듯 말했다.
“이 씨발, 사람 열받게…….”
남자는 한숨과 함께 쓰고 있던 안경을 벗었다. 이마에 가득 주름이 진다.
“아 당신은 사람 죽여 놓고 뭐가 그리 잘났는지 모르겠는데. 좀 실험에 집중하시다 어? 이거 결과가 좋아야 당신도 좋을 거 아니야. 적어도 정신병으로 판정나면 극형도 면해 질테니까. 안 그래요?”
대화는 더 이어지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를 노려보는 대치 상태가 굳어지자 남자는 다시 안경을 쓰며 사진을 들었다.
“자자. 그만하고 이거나 보세요.”
하지만 동규는 사진을 보지 않았다.
“당신 그거 알아?”
남자의 인상이 도로 찌푸려진다.
“또 뭐요?”
그는 잔뜩 비웃음을 머금은 채 대답한다.
“내 눈에 당신도 괴물이라는 거 말이야.”
웃음소리는 낮지만 높게 울었다. 그리고 그 웃음의 잔향은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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