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컬맨(Skull Man)
1장- 징조徵兆
어린 시절 나에게는 친구가 있었다.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친구였다. 그걸 뭐라고 말해야할 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유령 비슷한 게 아니었나 싶다. 그 당시 가장 유행했던 TV만화 중에서 해골가면 쓴 남자가 악당들을 물리치는 만화가 있었는데, 내 유령친구는 그 해골가면 영웅을 닮아있었다. 나는 그를 해골 남자-사내-라 불렀다. 해골 남자는 말이 없었으나, 힘이 무척 세고, 행동도 기민했다.
다른 사람들을 내가 혼자 있다고 생각하지만, 난 언제나 해골 남자와 함께였다. 그런 내 이상행동이 크나큰 오해를 낳았다. 나는 항상 음침한 아이로 오해를 받았다.
"야, 임마."
"나?"
"그래, 너 새끼야."
국민학교 4학년 때의 일이었다. 나는 그 몽환적인 사건을 아직도 기억한다. 나는 그날 체육시간에 실수를 했고, 덕택에 반 아이들이 단체기합을 받았다. 사교성이 없던 나였기에 아이들의 시선을 더욱더 따가웠다. 당시에 나는 키 작은 꼬맹이에 불과했고, 또래 아이들 중에 유달리 덩치가 큰 애들은 나에게 시비를 걸었다. 방과후 나는 교사 뒤편으로 불려나왔다. 4명의 사내애들이 험악한 얼굴로 나를 노려봤다.
퍽!
주먹질, 콰직! 내 머리를 강타한다. 눈앞에 폭죽이 터지는 듯하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아이들은 때론 악마 같은 잔혹함을 보여준다. 남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만! 그만해!' 라고 외치며 팔다리를 붕붕 휘둘렀다. 하지만 그 애들은 수도 많았고 덩치도 컸다. 나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으, 아아아아!"
개새끼들! 나는 악에 받쳐서 덤벼들었다. 나는 분노했고, 그 아이들을 증오했다. 꾸물꾸물 내 몸에서 무언가가 흘러나왔다. 스모그처럼 새카만 연기가 내 앞에서 뭉친다. 연기가 사람의 실루엣으로 형상화된다. 마침내 해골 사내가 내 앞에 섰다. 해골 사내를 쓰윽 나를 쳐다본다.
미워!
나는 그 아이들을 미워했다. 내 증오를 읽은 해골 사내가 움직였다. 허깨비처럼 가볍게, 빛살처럼 빠르게-! 해골 사내의 손이 아이들의 목줄을 조이고, 팔다리를 부러뜨렸다. 방과후 고요한 교사에서 처절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끔찍한 비명이었다. 해골 사내의 손가락을 타고 어린 선혈이 뚝뚝 흘러내렸다. 나는 오줌을 지리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2장- 평온平溫
중학생, 고등학생- 나이가 먹어가면서 해골 사내는 점점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없어졌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해골 사내는 마치 악몽처럼 자고 일어나면 흐릿한 존재가 되었다. 나는 더 이상 해골 사내에 대한 현실감을 느끼지 못했다. 해골 사내 밖에 친구가 없었던 그 음침한 아이는 이제 활발하고 사교성 좋은 청년이 되었다. 나는 해골 사내가 단지 어린 시절의 환상이라 여겼다. 무엇보다 그녀를 만나면서 해골 사내의 악몽은 끝났다.
대학생이 되어서 으레 그렇듯이 나는 여자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몇 번의 어색함과 머뭇거림 속에서 나는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고백했고, 우리는 커플이 됐다. 그녀와의 만남과 데이트는 그 무엇보다 즐겁고 행복한 일이었다. 나는 그 이상 바라는 일이 없었다.
내가 군대를 제대하고도 그녀와의 관계는 이어졌다. 당시에는 정말 보기 드물게 오래간 커플이었다. 물론 깨지지도 않았다. 나와 그녀는 결국 결혼까지 골인했으니까. 졸업 후, 나는 아슬아슬한 성적으로 꽤 이름 있는 회사 붙어 취직했고, 내가 취직한지 2년 만에 나와 그녀는 결혼을 했다.
그녀와의 신혼생활은 정말 행복했다. 장담컨대 내 일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이때를 꼽을 것이다. 나는 행복으로 충족감을 느꼈고,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나는 해골 사내가 환상이라고 믿었다. 어린 시절의 망상-.
"무슨 생각을 해?"
차분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내 뺨을 쓰다듬으며 사랑스럽게 웃었다. 나는 알몸인 그녀를 안으며 말했다.
"아무 것도."
아, 이 볼품없는 거짓말이여.
3장- 불안不安
17년이 흘렀다. 나는 40대 중반의 중년이 되었고, 나와 그녀 사이에는 중학생 딸아이까지 있다. 뭐, 처음에는 단란한 가정이었으나 IMF가 터지고,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가정까지 삐걱삐걱거렸다. 나는 능력 있는 사원이 아니었기에 만년 대리라는 딱지가 붙었고, 월급은 5년 넘게 그대로였다. 그나마 안 짤리는 것도 다행이거늘, 아내는 매일 같이 내 바가지를 긁기에 바빴다. 그 새침하고 아름답던 아가씨는 20년이 흐르자, 주름이 자글자글한 아줌마가 되었다. 나는 솔직히 그녀에게서 이제는 그 어떤 성적매력도 느끼지 못했다. 이래서 젊을 때 힘차게 사랑을 해야 하는 법이다. 여자나 남자나 30대, 40대가 되어버리면 젊은 날에 열정을 가자지 못했음을 후회한다. 내 주위에서도 눈만 높고 드라마 같은 연애를 꿈꾸다가 혼기 놓친 노처녀, 노총각들이 즐비하다. 아내는 정말 운이 좋은 편이었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나같이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남자를 남편으로 가졌으니까.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나원참.
나는 아내에게서 혐오에 가까운 짜증을 느끼며 출근했다. 딸아이는 내가 출근하는데 인사도 하지 않는다. 내 딸아이지만 벌써 발랑 까져서 중학생인데도 남자친구를 몇 번이나 바꿨고, 귀고리나 목걸이를 산다고 나한테 용돈을 타간다. 나도 참 멍청한 게 딸아이가 아양 떨며 애교 부리면, 무리를 해서라도 딸아이의 옷이며 액세서리를 사주게 된다.
나는 설마 내가 무기력하고 힘없는 가장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좋은 아침!"
나는 애써 기운을 차리며 회사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얼마 전에 새로 입사한 사원부터 나와 10년을 같이 일한 베테랑까지. 부서 사람들은 웃으며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런데 나와 달리 그들은 그다지 힘이 없어 보였다.
"어이, 왜 그래?"
"그게 박 대리…. 부장님이 부르시는데 가보지."
나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그의 표정을 읽었다. 미안함이 담긴 웃음. 억지로 웃는 입꼬리. 나도 저런 웃음을 참 많이 지었다.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부장 앞에 섰다. 예상대로 나는 퇴사를 강요받았다. 하긴 여태까지 버틴 것도 용했다. 별다른 실적도 없이 나이만 먹어가는 골치 덩어리였으니까. 입사 동기는 모두 승진하거나, 퇴사했는데 나만이 이렇게 제자리걸음이었다.
"박 대리, 좋게 말할 때에 명예퇴직하게. 그 돈으로 작은 가게라고 차리게!"
"하, 하지만!"
"나라고 좋아서 이러겠나? 그럼 얼마 전에 입사한 햇병아리를 내칠까? 이제 자네 차례네. 준비 안한 자네가 잘못이지."
나는 가망이 없음을 느꼈다. 아무리 버텨 봐도 결과는 꼴사나운 퇴직뿐이다. 나는 어깨를 늘어뜨리며 사직서를 냈다. 머리가 핑글핑글 돈다. 아내에게 뭐라고 말하지? 딸아이는 이제 중학생인데, 시집은 어떻게 보내지? 걱정이 뭉글뭉글 피어오른다.
4장- 흉성凶聲
"…."
"퇴직금은 받았어?"
"으, 응."
나는 아내에게 사실대로 말했다. 아내는 말없이 나와 앉아있었다. 나는 아내의 눈을 보는 게 두려웠다. 난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나를 책망하는 아내가 무섭다. 학교를 마치고 들어온 딸아이는 무거운 집안 분위기에 냅다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약삭빠른 계집애.
"여, 여보. 나 점심부터 저녁까지 굶었는데…."
"지금 밥이 문제에요!"
아내가 일어선다. 쾅! 하고 문 닫는 소리. 아내는 안방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 나는 혼자 거실에 앉아있었다. 나는 저녁으로 라면을 끓여먹고 소파에서 잠을 잤다. 걱정이 많아서 그런 걸까? 잠자리가 불편해서 그런 걸까? 아마 둘 다겠지. 나는 그날 악몽을 꿨다. 몇 십년 만에 해골 사내를 만났다. 그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단지 손가락을 들어 나를 가리킨다. 해골 사내는 어둠 속에 서있지만, 그가 입은 칠흑의 가죽슈트는 어둠보다 더 짙었다. 만지면 빨려들 듯이 끝이 보이지 않는 암흑.
"허억, 하아…."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벌떡 일어났다. 아직 캄캄한 한밤중이다. 집안은 조용하다. 나는 축축히 젖은 옷을 벗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얼굴이 화끈화끈해서 세수라도 해야겠다. 심기가 불편하고 초조해서 해골 사내의 꿈을 꾼 모양이다.
쏴아아아!
수도꼭지를 틀자 물이 쏟아진다. 시원한 감촉에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세면을 하고 거울을 바라봤다. 젊은 시절의 탄력 있는 피부는 자글자글해졌다. 더군다나 슬슬 머리도 한 움큼씩 쭉쭉 빠진다. 아버지가 대머리였기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참 볼품없는 중년이다. 그나마 위안인 것은 몸은 꽤 좋다는 거다. 별다른 관리도 하지 않는데 몸에는 적당한 근육이 붙어있다.
나는 딸아이 얼굴이나 보려고 방으로 들어갔다. 아무리 얄미운 계집애라도 내 딸이다. 불이 꺼져 어두운 방안에 딸애가 곱게 잠들어있었다.
고오오오오!
등 뒤가 오싹해진다. 나는 뒤를 돌아봤다. 그와 동시에 나는 배를 얻어맞아 허공에 붕 떴다. 책상에 허리가 부딪쳤다. 나는 허리를 감싸며 나를 후려친 녀석을 쳐다봤다. 나는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놀라 자지러졌다. 팔다리가 후덜후덜 떨렸다.
"해, 해골남자!"
해골 가면을 쓴 사내가 서있었다. 후욱, 후욱하는 사내의 숨소리가 들린다. 해골 사내는 천천히 딸아이가 덮고 있는 이불을 뒤집었다. 잠에서 막 깨어난 딸아이가 눈을 비볐다. 그 애가 해골 사내를 보고 비명을 지르려했으나, 해골 사내의 손이 딸애의 입을 막았다. 사내는 한쪽 손으로 딸애의 옷을 찢었다. 나는 깜짝 놀라 놈을 막으려 했으나, 허리 통증으로 무릎을 꿇고 말았다.
"아, 안 돼! 하지 마! 새끼야!"
들썩, 들썩.
침대가 흔들린다. 사내는 거칠게 딸애를 강간했다. 흉물스러운 물건을 딸애의 몸속에 집어넣는다. 피가 새어나오는 것도 아랑곳없이 몸을 움직인다. 딸애가 반항하면 사내는 큼직한 손바닥으로 그 애의 뺨을 때렸다. 나는 사내의 발을 붙잡아 끌어내리려 했으나, 그대로 발차기에 턱을 얻어맞았다. 시야가 위아래로 흔들리며 흐려졌다. 나는 이를 꽉 깨물었지만 눈이 감기는 걸 막지 못했다.
내가 다시 깨어났을 때는 새벽녘이었다. 참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린다. 창틈으로 새벽 한기가 새어나온다. 나는 악착같이 기어서 침대 위로 올라갔다. 벌거벗은 소녀가 침을 흘리며 앉아있었다. 그녀의 허벅지에는 피딱지가 말라붙어있다. 나는 그녀가 밤새 강간 당했음을 상기했다. 욕지거리가 입술까지 치민다.
"아, 아, 아…."
"정아-."
딸애는 대답이 없었다. 나는 그녀를 끌어안을 여유도 없이 밑층으로 내려갔다. 아내는? 아내는 어떻게 된 거지? 벽을 짚으며 겨우겨우 일어선 나는 비틀어진 걸음으로 안방으로 향했다.
집안은 놀라울 만큼 고요하다. 나는 얼굴을 감싸며 흐느꼈다. 씨발,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하필이면 해골 가면을 쓴 미친 새끼가! 나는 안방 문을 열었다.
킁.
비린내, 피비린내가 짙게 풍긴다. 안방에 내딛은 발밑이 축축하다. 반쯤 말라비틀어진 피죽이 발바닥에 쩍쩍 들러붙는다. 나는 난도질당한 한 여인의 시체를 바라본다. 피란 피는 모두 빠져 새하얗게 창백해진 아내의 얼굴. 아직도 발끝을 타고 피가 한 방울씩 뚝뚝 떨어졌다. 나는 아내의 발바닥을 매만지며 고개를 숙였다.
나는 왜 아내가 죽고, 왜 딸애가 강간 당한지 모른다. 왜 그 강도가 해골 가면을 썼는지도 모른다. 내 머리가 놀라울 만큼 침착하고 싸늘하게 식어간다.
그 개새끼는 내가 잡아 처죽인다. 거울에 비친 내 눈동자는 새벽빛을 받아 파랗게 빛났다.
5장- 암적暗跡
"해골 마스크?"
"아, 그 새끼들 아닌가요? 팀 스컬. 스컬라이더 새끼들요. 폭주족 무리인데 질 나쁘기로 소문났잖아요.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난리라니까요. 여기서 무슨 슬럼가도 아니고, 무법자처럼 구는 새끼들 있잖아요. 올해도 그 새끼들이 저지른 강도살인이 10건이 넘어요. 뭐에 홀린 것처럼 아무리 잡아들여도 수가 줄기는커녕 한 놈 잡으면 둘로 늘어난다니까요."
나는 형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앉아있었다. 그들은 사건정리를 하며 내 진술을 받아냈다. 그들은 의례적으로 내게 유감을 표했다. 나는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대충 범인 무리가 짐작 가는 모양이다. 나는 스컬라이더라는 단어를 잊어먹지 않기 위해 몇 번이나 중얼중얼 입에 담았다.
"스컬라이더…."
형사는 내 어깨를 툭 두드리며 조심스레 내게 가도 된다고 말했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경찰서 밖에 나가자마자, 기자들이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리며 마이크를 내게 들이밀었다. 그들은 내게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경찰들이 만류해도 그들은 내게 말 한마디라도 얻어내기 위해서 자극적인 질문도 마다하지 않았다.
"따님이 강간당했다는 게 사실입니까?"
"강도가 침입했을 때에 대항은 하셨나요?"
"지금 심정이 어떻습니까?"
나는 음침하게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들은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하이에나처럼 기사거리에 굶주린 인종들. 나는 바싹 마른입을 달싹였다.
"아내는 살해당하고, 딸애는 강간당해 실성했습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합니까."
기자들은 침묵했다. 그것도 잠시, 다시 소란스러워지며 내게 질문을 퍼부었다. 나는 더 이상 그들을 상대할 가치를 못 느꼈다.
나는 집을 팔고 작은 지하 단칸방을 얻었다. 딸애는 요양소에 들어갔다. 딸아이에게 들어가는 돈이 많았지만, 퇴직금과 보험금이 넉넉하게 남아있기에 돈 문제는 없었다. 3달 쯤 지나자, 언론도 잠잠해졌다. 끔찍했던 사건은 그저 세상에서 보자면 작은 일에 불과했다. 나는 그게 편했다. 사람들이 이 모든 사건을 잊기를 바란다. 그러면 앞으로 일어날 흉사와 나를 연관시키지 못할 거니까.
"이 모든 일을 끝냈을 때, 돌아가 마."
나는 지금이라도 당장 딸애를 보고 싶었지만, 이 모든 일을 끝내기 전에 그 애를 만나지 않을 것이다. 무능력한 가장의 모습으로 그녀와 마주할 수 없다. 나는 이를 꽉 깨물고 벤치 프레스를 들어올렸다. 지하단칸방에는 운동기구로 빼곡하다. 3달 동안 나는 끊임없이 몸을 혹사시켰다. 일주일에 세 번씩 무에타이, 복싱, 공수도 도장에서 스파링을 하고 쉬는 날에는 스컬 라이더들에 대해 조사했다. 나는 이 세상이 힘들긴 해도, 밝고 건전한 지 알았다. 슬럼가니 폭력배니 그런 건 영화나 드라마 속의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둠에 발이 들이자, 그 세계는 너무나도 또렷하게 존재했다. 일반인들의 세계와 완벽히 격리된 뒷세계. 나는 그 어둠이 통제하지 못한 불씨에 화상을 입은 자다. 나는 단지 운이 나빴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도 이제 알게 될 것이다. 그들도 운이 나빴다는 것을.
"정현 씨는 정말 초보자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배우시네요. 나이만 안 많았으면 격투기선수로 뛰어도 문제없을 정도에요. 정말 재능이 있어요."
날 가르치던 체육관장들은 전부 재능이 있다고 말했다. 내가 악착 같이 배우기에 그런 것이리라. 나는 더 이상 상대가 없을 쯤에, 체육관에 발길을 끊었다. 애초에 연락처고 이름도 허위로 등재했다. 나는 철심을 넣은 토시와 각반을 팔다리에 끼우고, 옷을 입었다. 그리고 바지춤에 삼단봉을 찔러 넣었다.
댕- 댕- 댕-
낡은 궤종 시계가 자정을 알린다. 나는 까만 후드를 뒤집으며 어두침침한 지하방을 열고 나갔다. 화려한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밤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눈을 감았다. 증오와 분노가 식지 않도록 끊임없이 그날 밤을 상기했다. 처참하게 난도질당한 여인, 내 눈 앞에서 강간당한 작은 소녀. 몸이 부르르르 떨린다. 뇌가 흥분한다.
준비는 끝났다.
AM 1:34
"아이고, 아저씨요-. 이거 나니까 구한 거지. 아무데서나 못구합니데이. 우리나라에서 총기팔아묵는 게 보통 일인 줄 아십니까. 지도 먹고 살아야지예."
말솜씨 좋은 총기 판매상이다. 꼭 만두 같은 통통한 얼굴이다. 꼴에 힙합패션이라고 귀걸이에 손가락에는 반지만 8개다. 질겅질겅 껌을 씹으며 사투리로 나에게 지껄인다. 입을 벌릴 때마다 싸구려 갈비 냄새가 풍긴다. 나는 그가 말할 때마다 숨을 참았다. 그는 권총 한 정에 큰 거 일곱 장을 요구했다. 그것도 탄환은 따로 사야 된다. 어차피 얼마든 상관없지. 나는 그와 실랑이를 부리지 않고 순순히 수표를 넘겼다.
"나중에 걸리도 지가 팔았다고 하면 안 됩니데이. 만약에 하모는 감옥에서 칼빵 맞습니더이."
돈만 받았으면 그만이지. 귀에 딱지 않도록 지껄인다. 그래, 지금 많이 지껄여라. 돼지 새끼.
나는 총알도 마저 구입했다. 그들은 내가 총알을 넣을까봐 신경을 곤두세운다. 테이블에는 돼지가 앉아있고, 양옆에 건장한 덩치의 사내가 둘이다.
사람에게는 급소란 게 있다. 체격, 근육과 상관없이 급소를 가격 당하면 누구나 치명타를 입는다.
“그럼….”
내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내
1초, 돼지의 안면에 주먹을 내리 꽂는다. 서있던 사내들이 품안에 손을 가져간다. 나는 삼단봉을 꺼내 펼친다. 팔뚝 길이 정도로 짧은 만큼 빠르게 가격 가능하다. 타닥, 연타가 들어간다. 목과 팔, 그들이 꺼내던 권총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2초, 땅에 떨어지던 권총을 발끝으로 차올린다. 권총이 핑그르르 회전하며 내 손에 잡힌다. 나는 그들을 겨누고 있다.
“씨, 씨발새끼.”
코가 뭉개진 돼지가 외친다. 이윽고 사나운 총성이 울린다.
팀 스컬, 단순히 폭주족이라 부르기에는 악질적인 반사회적 무리들이다. 일종의 종교적 성향까지 보이는 그들은 비윤리적 파괴행위를 서슴지 않고 자행한다. 경찰들도 끊임없이 그들을 잡아들이지만, 그 숫자는 거대 조직처럼 점점 늘어난다. 겉으로 드러난 표면은 폭주족 무리지만, 그 뿌리는 암흑가 깊숙이 박혀있다고 추측된다. 그들을 알아보는 방법은 몸 어딘가에 새겨진 해골 문신. 대게 그들은 자신들이 스컬 라이더라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기에 해골 문신을 드러내고 다닌다.
나는 그들을 쫓는다. 그들은 밤거리가 자기 것인 마냥 자유롭게 활보한다. 마약에 찌든 그들은 자신들만의 블랙 바이블을 섬긴다. 어둠의 지침에 따라 그 어떤 브레이크도 없이 욕망을 그대로 쏟아낸다. 강간, 살인, 남색, 고문-.
“해골 가면을 쓰고 다니는 놈을 찾는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만한 소년이다. 하지만 손등에는 해골 문신이 새겨져있다. 나는 총구를 소년의 이마에 들이밀었다. 아까 전에 몇 발 쐈기에 총구가 뜨거울 거다.
“해골 가면? 나, 난 몰라요!”
“선글라스가 멋지군.”
나는 소년이 쓰고 있던 검은색 보잉 선글라스를 벗겼다. 제법 마음에 든다. 나는 선글라스를 찬찬히 꼈다. 소년이 안심하는 순간, 나는 총을 거꾸로 잡고 소년의 머리를 후려쳤다.
“아, 악악! 씨발!”
시뻘건 피가 튄다. 소년은 벌벌 떨면서 머리를 감쌌다. 나는 다시 총을 빙글 돌려 겨눴다.
“저, 전 말단이라서 모른다니까요!”
나는 소년의 휴대폰을 꺼냈다. 전화번호목록에 ‘스컬’ 이라는 그룹이 따로 지정되어있다.
“여기서 가장 높은 놈이 누구지?”
소년은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나는 그 번호로 전화를 걸어 놈을 유인했다. 간부가 오기 전에 이미 소년은 싸늘한 시체가 되었다. 내가 들어오기 전에 공원에서 여자를 강간한 걸 자랑스럽게 떠벌렸기 때문이다. 그것만 아니라면 살려뒀을지도 모른다.
난 의자에 앉아서 간부를 기다렸다. 곧 문이 벌컥 열렸다. 건장한 덩치의 청년이 두리번거리다가 소년의 시체와 나를 번갈아 바라봤다. 나는 총을 들어올렸다.
“넌 뭐냐?”
총구가 자신을 향해있는데도 사내는 겁먹은 투가 아니었다. 이게 장난감으로 보이는 건가? 나는 시범삼아 빗나가게 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눈썹만 움찔했다.
“해골 가면을 쓴 사내를 찾고 있다.”
“해골 가면….”
사내는 말미를 흐리더니 갑자기 달려들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총을 쐈지만, 자세가 흐트러져서 옆구리를 관통하는 정도로 그쳤다. 그것만 해도 보통 전의를 상실하는 법인데, 사내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나를 몰아붙였다.
우지끈!
“칵!”
엄청난 악력이었다. 사내는 한손으로 내 오른손을 비틀었다. 나는 쥐고 있던 총을 놓고 말았다. 사내는 총을 발로 밀어버리고는, 내 목을 붙잡았다. 사내는 싸움에 능숙했다. 그리고 너무나 몸이 단단했다. 내가 주먹으로 사내의 얼굴과 몸을 두들겼지만, 바위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기이한 광기가 돌고 있었다. 그의 옆구리에서 솟구치는 피가 내 다리를 적셨다.
머리로 가는 피가 막혀서 정신이 혼미해진다. 나는 총알구멍난 그의 옆구리에 손가락을 박았다. 손가락을 벌려 구멍을 넓히고 팔목까지 파고들었다. 물컹한 내장 사이에서 그의 갈비뼈가 잡힌다.
"끄으으으."
사내의 눈동자가 붉게 충혈 되고, 입에서는 피거품이 들끓었다. 나는 있는 힘껏 갈비뼈를 꺾었다. 우지직! 뼈가 부러지는 파열음이 손끝을 타고 울린다. 사내의 비명으로 내 귀가 얼얼했다. 내 목줄을 쥐던 사내의 악력이 약해졌고 나는 발로 힘껏 그를 밀었다. 피를 토하며 사내가 꼴사납게 널브러졌다. 간신히 그는 숨만 헐떡였다. 나도 거친 숨을 고르며 땅에 떨어진 총을 집었다.
"말해. 해골 가면의 사내는 어디 있지?"
나는 피 묻은 선글라스를 벗어던지며 말했다. 사내는 내 얼굴을 노려보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더니 피가 역류하는데도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의 머리에 바짝 총구를 가져갔다. 그는 일그러진 괴소를 내보였다. 나는 더 이상 그의 웃음을 견딜 수 없었다. 불꽃이 한 순간 점멸하고 내 손이 피에 젖었다.
나는 그의 주머니를 뒤져 휴대폰을 찾아냈다. 다정한 남녀-그와 그의 여자친구-의 사진이 액정에 떠올랐다. 나는 애써 무시하며 최근 메시지기록부터 내려가다가 내가 찾던 정보를 얻어냈다.
[13일, AM 2, D빌딩. 24층 대집회.]
6장- 홀로코스트Holocaust
"24층은 간부급만 들어갈 수 있어, 자네도 신입인 것 같은데 분발하게."
나는 팔뚝에 해골 문신을 새기고, 내가 살해한 녀석들의 이름을 빌려 빌딩에 잠입했다. 조직의 크기는 내 예상보다 훨씬 컸다. 빌딩을 통째로 빌렸는지 온통 스컬 라이더들뿐이었다. 단순히 폭주족 범주를 넘어서서 폭력조직에 가까웠다. 나이대도 철없는 고등학생들부터 나이 지긋한 중년들까지 다양했다. 그 일관성 없는 연령대를 보면 종교집단 같기도 했다. 나는 가슴을 매만지며 옷 안쪽에 탄탄한 방탄조끼의 감촉을 느꼈다.
"이봐, 어딜 들어가는 거야?"
빡!
나는 나를 가로막는 경비를 때려눕히고 계단으로 성큼성큼 올라갔다. 나는 허리춤에 묶인 권총 두 자루를 집어 들었다. 24층 회의실 문에는 2명의 경비가 있었다. 그들은 나를 보자마자 총을 꺼내들었으나, 내가 먼저였다. 총성이 울리고, 회의실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나는 문을 살짝 열어 연막탄과 최루탄을 문틈으로 던졌다. 매캐한 연기가 빠르게 번져나간다. 나는 준비해둔 방독면을 쓰고 진입했다.
"어떤 새끼야!"
10명 남짓한 간부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지만, 연기와 최루탄 때문에 나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나는 다짜고짜 총을 쐈다. 살아남는 놈은 하나면 충분하다.
"넌 누, 누구야. 어떤 놈인데 감히-."
탕!
워낙 난사해서 절반도 죽지 않았는데, 탄창이 비었다. 나는 빈 탄창을 떨어뜨리고 새 탄창을 끼워 넣었다. 이제는 제법 능숙해진 손놀림이다. 서서히 연기가 가라앉는다. 나는 서둘러 남은 녀석들의 이마빡에 총알을 꽂아 넣었다.
"해골 가면을 쓴 녀석을 찾는다."
자욱하던 연기가 가라앉고 간부 하나와 나만이 회의실에 서있는 전부였다. 나는 간부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어디선가 본 듯이 익숙했다. 허나 분명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자다. 간부는 방독면을 쓴 내 얼굴을 응시했다. 나와 그는 서로를 관찰했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해골 가면?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 거지?"
눈물 콧물 다 쏟아내던 간부는 뭐에 홀린 듯이 중얼거렸다. 그 눈동자는 광기가 깃들어 있었다. 전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눈동자.
"자세히 말해봐. 새끼야."
나는 방독면을 벗어 던졌다. 간부는 눈을 크게 뜨며 내 눈동자를 응시했다.
"오, 과연. 그렇군."
간부는 엉금엉금 기어간다. 나는 여차하면 놈을 쏠 작정으로 천천히 뒤를 쫓았다. 그는 자신의 가방을 열더니 뭔가를 꺼냈다. 총인가 싶었지만, 총이라기에는 부피가 컸다. 그건 새하얀 해골 가면이었다. 그는 해골 가면을 썼다.
"이히히히."
광대처럼 그가 웃는다. 해골가면을 본 내 숨결이 거칠어진다. 벌써 반년 가까이 지난 일이지만, 또렷하게 기억난다. 그 날, 내 딸이 강간당하고, 아내가 죽었다. 그 때 그 놈이 내 앞에서 맛깔나게 처웃는다. 나는 어찌해야하는가?
나는 겁탈당한 소녀의 아버지이며, 살해당한 아내의 남편이다.
녀석은 소녀를 겁탈한 강간범이며, 내 아내를 살해한 살인자이다.
그가 내 앞에 있다.
나는 아버지, 내 목적은 복수.
탕!
7장- 리벤지Revenge
"그 동안 상태가 꽤나 호전되었습니다. 이제는 간단한 단어는 물론이고 식사도 혼자서 할 수 있을 정도죠."
나는 오랫동안 깍지 않은 수염을 면도하고, 머리를 매만졌다. 그리고 꽃다발을 한 아름 안고 딸애가 있는 요양원을 갔다. 이제는 그 애를 데리고 와서 함께 살 것이다. 일자리도 없고, 저축해놓은 돈도 이제 거의 바닥이지만 앞으로 어찌어찌 될 거라고 생각한다. 설마 굶어죽기야 하겠는가? 정 일거리가 없으면 막노동이라도 하면 된다. 꽤나 체력에 자신이 붙었으니까.
나는 기쁨에 찬 얼굴로 그 애를 보기를 학수고대했다. 원장은 부드러운 미소로 나를 안내했다. 마침내 딸애가 있는 방문 앞에 섰다. 원장이 먼저 들어가 딸애에게 뭐라고 말을 했다. 잠시 후, 원장이 들어와도 좋다는 신호를 보냈다.
딸애는 침대에 앉아 그림책을 읽고 있었다. 그렇게 말괄량이였던 딸애가 얌전히 있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너무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원래 딸아이와 친하지 않아서일까? 나는 섣불리 다가가지 못하고, 문 앞에서 그 애를 지켜봤다.
"아버님?"
"아, 네."
나는 살며시 침대 옆에 앉았다. 내가 온 것도 모르고 그림책에 열중하던 딸아이가 원장의 인도에 따라 고개를 돌리며 나를 봤다. 딸아이는 단번에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손을 뻗어 내 얼굴을 더듬더듬 만져본다.
"아?"
작은 탄성, 나는 밝게 웃었다. 딸아이가 나를 알아본 걸까?
"나…."
"응?"
딸아이가 무언가 작게 읊조렸다. 나는 그 애의 눈을 들여다봤다. 딸아이는 공포에 떨고 있었다.
"나-가-!!!"
딸아이가 그림책을 나에게 던졌다. 모서리 부분에 이마가 부딪쳤다. 이마의 피가 눈동자를 타고 흘러내렸다. 딸애는 벌벌 떨며 원장의 옷을 붙잡았다. 그 애는 나를 무슨 괴물 보는 것 마냥 혐오스럽게 쳐다보며, 때때로 비명을 지르며 발작했다. 도저히 그 자리에 있을 수 없던 나는 밖으로 나갔다.
나는 충격에 넋이 나가있었다. 원장은 가끔 이런 경우가 있다고 말했지만, 내 심란한 마음은 정리되지 않았다. 나는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아직 시기상조라서 그런 것이리라. 천천히 기다리면서 매일매일 찾아간다면 사이좋은 부녀는 아니었지만, 다시 한 번 가족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나는 허름한 지하방으로 돌아가다 낯익은 얼굴과 마주쳤다. 몇 번이고 나를 찾아왔던 형사였다. 이미 밥도 같이 먹을 정도로 익숙한 사이지만, 나는 아직도 그의 이름을 모른다. 그저 형사님이라 불렀다. 나는 걸리는 일이 많아 그와 만나는 게 반갑지는 않았다. 나는 억지로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여, 안녕하십니까. 형사님."
형사도 웃으면서 내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나는 그 순간, 그의 눈가를 스쳐가는 날카로움을 알아챘다. 그는 평소와 달랐다.
"널 존속살해 및 강간 혐의로 체포한다. 너에게는- 악!"
나는 단숨에 그의 내 팔을 붙잡는 그를 밀치고 바지춤에 손을 가져갔다. 항상 가지고 다니던 권총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오늘은 총을 놔두고 밖에 나왔다. 나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형사를 향해 몸을 날렸다. 꼴사나운 길거리 난투전이 벌어졌다. 형사밥 10년 차인 그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개새끼!"
"씨발놈!"
누구 먼저 할 것 없이 욕을 내뱉으며 주먹질을 한다. 나는 그의 옆구리에 니킥을 먹였다. 갈비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형사가 숨을 헐떡이며 허리를 굽혔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에 익은 동작을 펼쳤다. 깔끔한 어퍼컷이 그의 턱에 들어갔다. 형사의 동공이 위아래로 흔들리더니 풀렸다. 나는 누가 보기 전에 형사를 지하실로 끌고가 손발을 묶었다.
"칵."
나는 입 안에 고인 피를 뱉으며 얻어맞은 코를 문질렀다. 우득! 어긋난 코가 제자리를 찾았다. 그런데 아까 형사가 무슨 말을 했지? 존속살해 및 강간? 어?
"존속살해?"
그게 무슨 헛소리야. 범인은 해골 사내지, 내가 아니다. 그리고 그 해골 사내를 내가 직접 내 손으로 죽였다. 나는 찝찝한 기분을 참지 못해 화장실로 달려갔다. 찬물을 콸콸 틀어 손을 빡빡 문질렀다. 분명 해골 사내는 죽었어. 모든 게 끝났단 말이야.
"누가 죽었다는 거지?"
나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봤다. 해골 사내가 그 자리에 서있었다. 어린 시절 이후로 다시는 나타나질 않던 그가 지금 모습을 드러냈다. 내 망상 속의 존재. 나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랄하지 마. 망상은 망상일 뿐이다. 마음이 심란해서 헛것이 보이는 거야.
내가 화장실에서 나갔을 때, 형사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당황하여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바로 내 옆을 보는 순간, 내 정수리에 강렬한 충격이 왔다. 나는 휘청휘청거리면서도 필사적으로 자세를 바로 잡았다. 손발을 묶어놨는데 용케도 푸는데 성공 했는 모양이다. 나는 흐릿한 눈동자로 그를 응시했다. 아까 충격으로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씨발, 자기자식 잡아먹은 새끼."
"지랄하네. 개새끼야. 생사람 잡지 마."
집안이 엉망진창이 된다. 아까의 충격 때문에 간신히 버티는 것이 전부다. 나는 총을 숨겨둔 옷장으로 슬금슬금 옆걸음 쳤다. 형사는 내 낌새가 이상한 걸 눈치 채고 나를 덮쳤다. 나와 그는 엉망진창으로 뒤엉켜서 방안을 굴러다녔다. 그 와중에 옷장에 크게 부딪쳐서 옷들이 우르르르 쏟아졌다. 나는 악착같이 손을 뻗어 옷더미 속에서 총을 찾았다. 묵직한 쇳덩어리가 잡혔다.
철컥!
나는 형사의 미간에 총구를 가져갔다. 형사의 눈이 커진다. 나는 망설임이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짧은 불꽃이 지하실을 가득 메운다. 형사는 머리에 구멍을 뚫려서 입을 쩌억 벌리고 있었다. 나는 거친 숨을 고르며 옷장을 잡고 일어섰다. 앞으로 어떻게 하지? 형사를 죽이다니. 젠장! 젠장! 젠장!
씨발, 겨우 모든 일을 끝냈는데. 이제 딸아이랑 같이 살 수 있는데. 빌어먹을 형사가 헛다리 짚기는! 개새끼! 나는 허탈하게 의자에 앉았다. 손 안에서 총이 미끄러져 떨어졌다. 회색 콘크리트 천장에서 시멘트 냄새가 짙게 풍겼다. 내가 형사를 죽였다고? 웃기지 마!
나는 천천히 옷장으로 걸어갔다. 흐트러진 옷들 사이로 하얀 무언가가 보였다. 나는 그것을 들어서 응시했다. 손바닥보다 조금 큰, 마치 사람 얼굴만한 그건- 해골 가면 같았다. 공허한 해골 가면의 눈동자가 번뜩인다.
"내가 죽이지 않았어."
해골 사내는 아직 살아있는 모양이다. 해골 사내는 또 다시 내 집에서 살인을 저질렀다. 빌어먹을 새끼, 이번에는 반드시 잡아서 족쳐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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