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게, 친구들. 밖에는 비가 오나? 아까부터 창문이 삐걱대는 소리가 멎지를 않는군, 그래. 내 목숨마냥 얼마 남지 않은 저 양초도 바람에 금방이라도 꺼질 듯 하고 말이야...
내가 이 밤중에 이 골방까지 오라고 한 이유는 자네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일세.
사실, 이제 와서야 하는 말이지만, 그건 다 거짓이었네, 친구들. 뭐? 이미 알고 있었다고? 아니야, 아니야. 이보게, 친구. 자네는 알 수도 없고 알아서도 안 되는 일이었네. 만일 그랬다면 지금 난 작고 어둡지만 그럼에도 아늑한 이곳이 아니라 회색 벽돌로 거대하게 포장된, 철창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최후를 맞고 있었을 걸세. ...마치, 그녀가 있던 곳처럼 말이지.
...그래, 자네들도 익히 알다시피, 이 지상에는 지고지순한 사랑이 존재할 수 없지. 자네들도 살아오면서 몇 번이고 되풀이하며 깨달은 바가 아니던가? 결국 남성과 여성은 애초에 에테르가 다른 존재인 게야.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줄곧 마음 속 깊은 곳, 상처의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라네. 그런데 왜 그런 사랑을 포기하지 못하느냐고? 좋은 질문이네, 친구. 아주 좋은 질문이야. 그건 바로, 우리가 이기적인 욕망에 가득 차는 형벌을 판결 받은 채 이곳에 유폐되었기 때문이라네. 유폐지에서의 사랑은 결국 자신의 쾌락만을 위하는 행위이고, 그렇기에 이 형벌은 아무도 형벌이라고 인식할 수 없게 되어버리지. 오, 물론 나 또한 그러한 판결을 받은, 형벌을 벗어날 수 없는 죄인이었고, 또한 죄인이지.
...바닷가 왕국이야. 우리가 사는 모든 땅은 결국 바닷가라네, 친구들. 그대의 고향이 그 어디라 할지라도, 그대가 살고 있는 곳은 결국 바닷가가 되어버린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그리고 또 한 가지, 그대가 비록 무슨 자유 어쩌고 하는 곳에 산다손 치더라도, 우리가 판결을 받은 곳은 왕국이었다는 사실을 명심하게. ...좋아, 지금 당장은 이해가 가지 않더라도 그냥 끝까지 듣게나. 그 편이 자네들에게는 더 바람직할 테니...
내 이제는 나이마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오랜 얘길세. 그녀도 아이, 나도 아이였지. 하지만 친구들, 생각해보게나. 형벌을 타인보다 한발 앞서 깨달은 자들은 언제나 그 형벌에 충실하려고 들지 않던가? 나 또한 그러했다네. 귓가에 쟁쟁대던 더러운 치천사들의 비웃음소리! 그 소리를 잠재울 수 있는 길은 단 하나였다네. 속히 그 형벌을 이행하는 일. 하지만 내 방금도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아이였다고. 그런 점에서, 그녀는 매우 훌륭한 집행관이 될 수 있었네.
그녀는 나보다, 또 여기 있는 우리들보다는 적어도 그녀는 우리들보다는 더욱 그 왕국의 주민들의 형상에 가깝게 유배를 왔다네. 그것은 참으로 다행이었지. 자네들도 알다시피, 그 왕국의 주민들-천사라는 이름은 아직도 입에 붙지를 않는군, 그래-은 이용하기가, 아니, 그 왕국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랑을 하기가 쉽다는 특성이 있지 않던가. 하지만 그 특질은 이 지상에서는 죄인들에 의해 비웃음거리로 전락해 버리는 경우가 다반사라네-그리 안타까워할 것 없다네, 친구. 의인이 죄인들에 의해 손가락질 받는 일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닐세-.
하여간에, 그녀의 부모는, 또 친척들은 의인인 그녀를 부끄러워했다네. 그녀에게 주어진 것은 하루 두 끼의 식사와 석양만을 맞이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창문 뿐. 허나, 의인은 그 어디에서나 숭고한 봉오리를 틀어올려 이윽고는 꽃을 터뜨리기 마련 아니겠는가. 참고로 말해두자면, 그 바닷가 왕국의 왕은 이러한 신비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그 왕국의 국화國花를 민들레로 정해버렸다 하더군. 한 때 연꽃도 후보 대상에 올랐지만, 그 꽃은 그 옆의 무슨 공화국인가에서 이미 국화로 지정하는 바람에 결국... 이런 이런... 쓸 데 없는 소리가 길어졌군. 용서하게, 친구들. 나이가 들면 자신의 되찾은 지식을 함부로 떠벌리고 싶어지는 법이라네. 괜찮다면,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하도록 하지.
그래... 나날이 커져가던 꽃봉오리는 마침내 내 형벌에의 인식을 각인시켜 주었네. 그래서 나는 한때나마 이런 착각도 했었지. 어쩌면, 정말 아주 어쩌면, 지고지순한 사랑은 존재할지도 모른다, 더러움과 어두움으로 가득 찬 이 유폐지에서 조차. 아, 지금 돌이켜 보면 그 얼마나 치기 어린 감성이었던가...
달이 반쯤 차오르던 밤이었다네, 친구들. 그녀는 아직 보이지 않는, 여명이 다가오지 않으면 볼 수 없게끔 만들어진 그 창문 밑에서 더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달을 기다리고 있었지. ...그렇다네, 친구. 바로 지금부터의 이야기가 내 첫째 거짓이라네. 그녀는 이미 그 왕국의 주민들로부터 안타까움을 한 몸에 받고 있었으니, 다시 말해, 이미 그 왕국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반쯤 몸에 담고 있었기에 형벌을 이행할 필요성을 느낄 수 없었겠지. 형벌을 갈구하는 것은, 바로 나였다네.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 그 외에 다른 어떤 생각도 없던 것은! 바로 나였다는 말일세. 그 다음? 그 다음이라고 했나, 친구들? 오, 그야 당연한 일이 아닌가. 사랑을 했다네. 물론, 이 유폐지에서의 방식대로였기는 하지만 말이야-사실, 나는 어쩌면 아직도, 이 유폐지에서의 사랑 방식이 그 왕국에서의 사랑보다 배는 즐겁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네-.
그리고- 그리고-
적다면 적다고도, 또 길다면 길다고도 할 수 있는, 왜 그런 뻔하고 재미없는, 상투적인 표현으로 줄곧 치장되는 시간들 있지 않은가. 꼭 그만한 시간이 흘렀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네, 친구들. 달이, 그 오만한 얼굴을 나날이 바꿔감에 맞추어 아릿하게 들려오던 첫 닭의 울음소리를. 형벌을 깨달은 자라 할지라도 유폐지에서, 유폐된 이들이 새로이 쌓아올린 웃기지도 않는 그 제약에는 몸을 떨게 되지. 다만, 범인凡人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의 죄책감이라는 것이 우리에게는 그저 한 순간의 몸 떨리는 유희에 불과하다는 점일세. 그렇게 달이 차고, 다시 이지러지고, 다시 차고... 그러기를 4번 반복하고도 꼭 엿새가 흘러갔다네. 그 동안의 우리는, 아니... 이것 또한 거짓이 되어 버리겠군... 그래, 그 동안의 나는 이 유폐지에서의 사랑 이상의 특별함으로 그녀를 사랑했다네. 그렇다고 착각하지는 말게, 친구들. 그 왕국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이곳에서 재현되었다는 소리는 결코 아니니 말일세. 그저, 이 유폐지의 대다수가 행하는 형벌과는 훨씬 다른 방법으로-어쩌면, 자네들 가운데에도 이 특별한 형벌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친구도 있을지도 모르겠군 그래- 그녀를 보듬었다는 뜻이니 말이야. 이 형벌은, 유폐지에 먼저 와서 지내던 모든 이들의 형벌에도 반反하고, 또 그 왕국의 일에도 거스르는 것이었지. 그랬기에 유폐되어 온 처지의 나는, 일종의 희열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네. 쫓겨난 자가 쫓아낸 자에게 대항하여, 그럼에도 판결을 이행한다는 점에서 왕은 나를 비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 얼마나 유쾌한 복수인가! 하지만, 4번의 달의 움직임하고도 엿새... 그날 밤,-이라고 해야 할지 새벽이라고 해야 할지 아직도 사실 조금 혼란스럽네만- 달이 드디어 그 작은 창에 모습을 드러내 그녀를, 그녀의 일그러진 얼굴을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게 비추던 때였네. 유폐지에서의 제약이 우리를, 이런, 자꾸 말이 헛 나오는군 그래,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를 덮쳤네. 음? 무언가 이상하지 않느냐고? 무엇이 이상하다는 말인가, 친구. 내 앞서 이미 자네들에게 말하지 않았던가. 그녀의 가족은, 그리고 친척은 그 왕국의 주민의 모습에 가깝게 유폐되어 온 그녀를 몹시도 수치스러워 했다고.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네. 그녀로 인해 형벌을 집행하던 나날에 들려오던 치천사의 목소리는, 아, 부러움의 목소리가 아닌 철저한 냉소에 지나지 않았음을. 그 무렵의 나는 이미 형벌에 모든 것을 내맡겨 그녀가 없이는 유폐 생활을 지속할 자신이 없었다네. 이것을 아는,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모두 알고 있는 치천사들은 그 특유의 오만하고 냉철한 시선으로 나를 직시하고 있었던 게야.
...이런 일들을 알 턱이 없는 그녀의 가족들은, 아니, 또한 나의 가족들은 왕이 미리 정해둔 각본에 따라, 가문의 수치인 그녀를 그 왕국으로 되돌려 보내기로 했다네.
아직도 이렇게 눈을 감으면 생생히 떠오르는군... 평소에는 나 이외에는 결코 아무도 열지 않던, 그 육중한 문이 힘겹게 열리고... 검은 연기를 가끔씩 게워내며 춤추는 횃불... 가족들의 굳게 닫힌 입과 떨리는 눈동자... 이마와 명치께, 좌우 어깨를 그으며 움직이는 그 왕국의 표시...
솔직히 말하겠네, 친구들. 나는 두려웠다네. 그 때 만큼은 그 어떤 용기도 형벌도, 혹은 깨달음조차도 가족들로부터 나를 지켜줄 수 없다는 생각과 마주쳤네. 그래서- 그래서 나는 그 순간의 마지막 용기를 짜내어 내 손을 들었지. 그게 무슨 뜻이었냐고? 글쎄, 내 영리한 검지가 덜덜 떨며 그녀를 가리키고 있었다는 것만 얘기해두고 싶군. 그 다음은-
그녀는, 그 왕국으로 돌아갔다네.
음? 자네는 꽤 머리가 잘 돌아가는 친구로구만 그래. 허허... 그래, 자네 말대로일세. 이 정도의 일로는 나는, 적어도 나는 유폐지의 유폐지에서 죽음을 맞이할 일은 없겠지. 어디까지나, 이것이 끝이라면, 이라는 가정 하에.
형벌을 온 몸으로 기억해버린 나는, 그 형벌의 진위를 왜곡시켜 이 유폐지에 남기고 싶었다네. 왜냐고? 그럴싸한 이유 따위는 없다네. 다만, 치천사들의 끊임없는 냉소에 대항할 유일한 길은 그 외에는 없다고 생각했을 뿐.
그믐의 능선 험한 산길이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기에 더없이 걸맞은 공간이지. 생각해보게, 친구들. 달빛 한 점 없는 험한 산길을 홀로 걸어가는 소년의 모습을. 어째서인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나의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는 기억이 남아있다네. 뭐, 이건 중요한 얘기가 아니군, 그래.
아 참, 방금 하던 이유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만 다시 하자면, 나는 알고 있었네, 한 가지 사실을. 그녀의 태 안에는, 이미 새로운 유배 생활을 겪을 뻔 했던 무엇이 들어 있던 것을.
몇 시간이나 걸려 겨우 찾아낸 그녀의 매립지-봉분도, 비석도 없이 그저 흙으로만 뒤덮여 있었으니 확실히 제대로 된 무덤이라고는 할 수 없었네-는 매우 황량했다네. 앞으로는 그저 깎아지른 듯한 가파른 절벽이 있을 뿐이었지. 나는 몸을 굽혀 열심히 그 새로운, 아직 온기가 남아있을 것만 같은 흙을 파내기 시작했네. 기본적인 장비조차 챙길 수 없었기에 그저 맨손으로 파내려갔지. 가쁜 숨을 턱밑까지 끌어 당기며...
...예상 외로 그녀의 주검은 그리 깊지 않게 묻혀 있었다네. 나는 허겁지겁 그녀를 건져 올려, 상비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주머니칼을 꺼냈네. 날이 아주 잘 서 있는 녀석이었지. 나는 확인을 위해 내 손가락 하나를 살짝 칼로 그어보았네. 어두워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끈적한, 또 따뜻한 무언가가 손바닥 위로 주르륵 흘러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네. 이제, 나의 고통으로 인해 그 상황이 꿈이 아니라는 것은 다행스럽게도 입증이 됐고... 내가 할 일은 정해져 있었네. 왕이 모든 것을 정해 두었다면 이 또한 그의 책임이리니, 내 마음은 더없이 평안했다네.
소년이 인체에 대해 무어 그리 많은 것을 알고 있었겠나. 결국, 자궁을 찾아내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또 인피지人皮紙의 훼손이 있었다네. 그리고 그녀의 자궁을 들어 낸 나는 적잖은 배신감에 치를 떨어야만 했네. 인체에 대해 무지한 소년이라 할지라도 아기가 얼마 만에 땅을 디디는지는 알고 있었지. 또, 그 안에서 그 형태를 갖추려면 대강 얼마만큼의 기간이 소요 되겠다 하는 것도 얼추 미루어 알 수 있지 않은가. 게다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4번의 보름과 엿새 동안에는, 손과 발의 형상을 갖춘 아이가 만들어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날들이 아닌가.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고? 보채지 말게나. 지금 말하려는 참이니. 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지 않은가. 소년은 산을 뒤지고 매립지를 파고, 난생 처음 접하는-흠, 어떤 의미에서는 이 또한 거짓이겠군- 인체의 내부를 보았네. 그런 소년은 매우 허기진 상태였지. 왜 그런 눈을 하고 있는 겐가, 친구들? 그런 눈으로 나를 볼 필요 없네. 자네들도, 아마 자네들도 모르는 사이에 한 번씩 동족을 소화시켰을지도 모르는 일일세.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글을 적을, 그녀의 살갗으로 된 것을 먹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내가 자궁을 찾아 그녀를 헤집어 놓는 바람에 그 아름다운 인피지는 이미 상당 부분 훼손되었기도 했고 말이야.
자아, 이제 복수극 시간이 되돌아 왔네. 내 집행관에게 나보다 먼저 형벌을 받은, 용서할 수 없는 나의 핏줄에 대한. 그러나, 그것이 정확히 누구에 의한 일인지는 알 길이 없었지, 당연하지만. 그렇다면, 뭐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연대 책임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마음에 드는 표현이지. 그믐밤이니, 이 일이 왕국에까지 보이려면 커다란 불이 필요했다네. 집은, 또 마을은, 장엄하게, 장엄하게, 장엄하게 타올랐다네. 환한 조명도 있는데 당연히 글을 써내려가는 것이 이치 아니겠나. 그녀의 살갗에, 그 아름다운 종이에, 나의 피는 너무나 잘 어울리는 잉크였지...
"이봐, 포우. 내가 이번에 여행을 다녀왔는데 말이야. 놀라지 말게. 이게 뭔 줄 짐작이나 하겠나? 무려 사람 가죽이라더군! 반신반의하긴 했지만... 여기 적힌 시인지 노래인지도 아주 괜찮더군. 그래서 내, 없는 여비를 탈탈 털어 자네를 주려고 사왔네. 나중에 술이나 한 잔 사라구."
포우는 친구로부터 건네받은 그것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바삭바삭하는, 내구성이 이제는 거의 사라진 종이-친구의 말에 의하면 인피지- 위에 희미한 갈색 빛으로 한 편의 시가 쓰여 있었다. 그는, 천천히 그것을 읽어 내려갔다.
"아주 오래고 오랜 옛날의 일이었지,
바닷가 어느 왕국에,
애너밸 리란 이름으로 알려진
한 아가씨가 살고 있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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